내가 사는 곳은 5월부터 한 여름 날씨다. 더운 날씨 탓인지 일 년 내내 각종 벌레들이 집 안팎에 많다. 특히 5월엔 하루살이들이 떼 지어 몰려다닌다. 그래서 하루살이를 영어로 Mayfly(오월의 파리, 오월의 곤충)라 부르는 듯싶다. 짧게 산다는 뜻의 희랍어를 어원으로 에페메라(Ephemera)라고도 한다.
하루살이는 지구촌에서 가장 오래된 곤충으로 알려져 있다. 대략 3억 년 전에 나타나 아직까지 형체가 크게 진화하지 않고 그 모습 그대로 지니고 산다. 생태학에서 살아있는 화석이라 부르는 게 그런 이유다. 지구상에는 4,000여개의 하루살이 종들이 있다. 물속에서 태어나 2-3년 애벌레 상태로 살다가 날개가 생겨 지상으로 날아오른 뒤 대개는 2-3일 안에 죽는다. 몇 시간도 못 돼 죽는 종도 있고, 20일 동안 사는 종도 있다.
지상에서의 짧은 삶 동안 이들은 오직 번식과 종족유지를 위한 짝짓기가 목표다. 수컷은 짝 짓고 난 후 죽고, 암컷은 알을 물속에 낳은 후 혹은 알을 낳다가 물고기에 먹혀 죽는다. 매미도 수명이 짧은 곤충으로 땅 속에서 몇 년 간 애벌레로 성장하다가 날개달린 성충이 되어 지상에 올라와서는 보통 일주일 살고 죽는다.
하루살이는 플랑크톤처럼 지구촌의 아주 착하고 귀한 생명체다. 모든 생물의 먹잇감이 되어 지구촌의 생태계를 유지시켜 준다. 플랑크톤은 수중 생물 중 먹이사슬의 맨 밑바닥이고 하루살이는 육상 생물 중 가장 밑이다. 이렇게 착한 하루살이의 짧은 수명을 우리는 가끔 더 짧게 만든다. 떼 지어 달아드는 게 귀찮다고 하루살이 없애는 기구나 화학물질들을 사용한다.
나는 어려서 빨간 잠자리와 매미를 잡으러 다니기에 바빴다. 젊어서는 하루살이들이 얼굴에 달려들면 두 손바닥을 마주쳐 없애버렸다. 나이 들자 하루살이가 귀찮게 굴어도 없애지 않고 두 손을 저어 쫓아버린다. 지금 생각하면 수명 짧은 곤충들을 죽인 것이 매우 안타깝다. 인간의 수명도 상상할 수 없이 무한한 우주의 시간으로 보면 하루살이에 불과하다. 그런 짧은 세월 동안 희로애락의 갈등 속에서 힘들게 살다가 묻히는 게 우리네 인생이다.
크로아티아의 어느 도시에 가면 ‘깨진 관계 박물관(Museum of Broken Relationship)’이 있다. 두 남녀가 4년 간 연애하다가 헤어졌다. 13년이 지나 우연히 만난 그들은 교제하던 중 주고 받은 값싼 물건들을 찾기 시작했다. 정이 들어 버리기 아까웠던 커피 잔, 인형, 성모 마리아가 새겨진 물병 등을 한데 모았다. 각각의 물건들에 담긴 사연을 생각하며 헤어질 때의 아픔, 아쉬움, 분노 등의 감정을 승화시키려는 의도였다. 입 소문이 펴져 세계 각지에서 깨지고 부러진 관계를 경험한 사람들이 지니고 있던 여러 가지 물건들을 기증해 오자 그것들을 모아 놓고 부러진 박물관이라 이름 붙였다.
여행자의 명소가 된 박물관에는 사람들의 한숨 소리 대신 웃음과 조크가 넘쳐 난다. 진열된 물건들은 애정관계를 지속하지 못한 후회로 뭉쳐있는 마음속의 응어리를 잘 어루만져 주기 때문이다. 이별의 아픔 속에서만 사랑의 깊이를 알게 된다는 어느 시인의 말과도 통한다.
우리 내면의 마음, 우리 무의식의 마음을 들여다 본 후 이해하고 공감하는 정신과정이 정신분석 심리치료다. 특별한 케이스를 제외하고는 인간관계의 아픔을 달래기 위해 힘든 심리치료를 받을 필요가 없다. 그저 일상적인 일에서 자신에게 맞는 치유방법을 찾아가는 게 중요하다.
하루살이도 실연, 이별, 슬픔 같은 게 있을까?
목숨이 붙어 있는 모든 생물은 먹어야 산다. 곧 죽을 줄 아는지 하루살이는 먹는 입조차 퇴화했다. 오직 사랑을 위해, 짝짓기를 위해 삶의 모든 에너지를 바친다. 그들이 떼 지어 다니는 것도, 밝은 빛을 보고 전등 주위로 몰려드는 것도 다 짝짓기 파트너를 쉽게 찾을 수 있는 이유다.
조건 없는 사랑과 희생이 함께한 하루살이의 삶은 아름답고 숭고하다. 그렇게 절실한 그들의 삶 속에는 실연, 슬픔 같은 여유와 사치가 있을 것 같지 않다. 한 순간을 사는 하루살이에게는 크로아티아의 부러진 박물관도, 복잡한 심리치료도 필요 없다. 환자를 치료하다 보면 살기에 너무 바쁜 사람은 우울증세가 있어도 느끼지 못한다. 하루살이도 그와 비슷한 경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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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양곡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