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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해진 권력에 대한 응징

2022-06-09 (목) 이철균 서울경제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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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의 후폭풍은 컸다. 지지율이 폭락한 한나라당은 수습책으로 박근혜 대표 주도로 천막 당사를 칠 정도로 국민들에게 다가섰다. 2004년 총선을 121 대 152석(열린우리당)으로 선방한 이유다. 겸손한 정치권력에 국민은 잠시 노여움을 거뒀다.

이후 선거부터는 한나라당에 지지를 보냈다. 2006년 지방선거를 시작으로 2007년 대선, 2008년 총선까지 한나라당은 파죽의 3연승을 이뤄냈다. 2008년 총선은 범보수 진영의 당선자가 200명을 넘을 정도의 압승이었다. 소위 보수의 황금기였다. 중앙·지방정부는 물론 대권까지 거머쥐었다.

보수는 그러나 언제 그랬냐는 듯 오만이 넘쳤다. 천막의 기억은 사라졌다. 권력을 쥐려는 내부 분열에 세력은 휘청했다. 그래도 위세가 대단해 2012년 총선·대선을 모두 이겼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국민은 더 참지 않았다. 2014년 지방선거부터 이상 기미가 보였고 국민은 ‘전대미문’의 보복을 했다. “도무지 방법을 찾을 수 없을 정도였다. 이대로 보수는 끝나는 줄 알았다”고 회고할 정도였다.


2020년의 21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압승을 한다. 2016년 총선을 시작으로 해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까지 내리 4연승이었다.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한 정당이 전국 단위 선거를 네 번 연속 이기기는 처음이었다. 21대 총선은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180석(더불어시민당 포함)을 확보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후 보수는 거의 자멸 수준이었고 민주당은 10년·20년 집권론을 공공연히 거론할 정도였다.

착각은 오만을 또 낳았다. 협치는 찾아볼 수 없었고 적폐청산을 기치로 독선의 정치를 이어갔다. 내로남불 속에 진보의 영양분인 도덕성마저 무뎌졌다. 당내 소수의견도 묵살됐다. 그런 정치권력을 국민은 역시 묵인하지 않았다.

민주당은 지난해 4·7 재보궐선거에서 참패했다. 국민의 1차 경고였다. 말로만 혁신을 외칠 뿐 갑옷이 두꺼워진 민주당은 그래도 변하지 않았다. 팬덤과 양극단의 정치 세력이 정치를 좌지우지 했다. 합리적 비판은 설 자리를 잃었다.

그러자 국민은 더 큰 채찍을 들었다. 대선 패배. 그것도 0.73%포인트 차이에 불과했다. 당 내에서 86세대 퇴진 등 혁신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이른바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라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0.73%포인트 차이의 패배는 되레 부메랑이 돼 민주당을 흔들었다. 지방선거에서 질 수 있다는 숱한 경고에도 송영길·이재명 출마로 인한 논란, 청문회 망신, 지도부 자중지란 등 패배 공식에만 충실했다. 결과는 뻔했다. 17개 광역단체 중 12 대 5로 국민의힘이 압승했다. 피 말리는 접전 끝에 경기도지사를 0.15%포인트 차이로 역전승한 게 성과라면 성과일 뿐 완패다.

선거에서 대패를 한 뒤 여야는 대략 4가지의 이유를 공통으로 꼽아왔다. 너무 뻔한 것이어서 평시에는 유령처럼 보이지도 않는 것들이다. ①대안 세력으로 신뢰감 부족 ②자만과 판세 오판 ③전략의 실패 ④리더십의 부재. 역으로 이를 피해가면 연패나 대패는 없다는 얘기인데, 실천이 어렵다. 권좌에 올라선 순간, 술처럼 취하는 권력의 마술 탓이다.

그렇다면 국민의힘은 연승의 서막이 열린 것일까. 이번 선거에서도 국민은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에도 슬며시 경고장을 심어 놨다. 50.9%에 불과한 투표율을 비롯해서 경기도지사에 대한 초박빙 패배, 지방정부 곳곳에 남겨둔 견제 세력들이 그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권력에 취해 혁신은 멀리하고 오만에 취하는 순간 2년 뒤 총선에서 다시 회초리를 들겠다는 신호다. 지방선거를 이끌었던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결과를 받아 든 뒤 “감사하고 또 두려운 성적”이라고 평가했다. 결국 두려움을 기억 하느냐, 아니면 망각하느냐. 2년 뒤 총선에서 그 응징의 대상은 그 기억에 달렸다.

<이철균 서울경제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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