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의 미학
2022-05-28 (토)
김관숙 / 소설가
틱낫한 스님의 강연을 처음 접한 건 2003년, 스님이 처음으로 방한한 때였다. 그분이 방한하기 전부터 각 매스컴에서 상세한 자료를 보도해서 많은 이들의 관심이 쏠렸다. 나 또한 이른 아침부터 설레는 마음으로 강연장에 도착했다. 친구들은 먼저 와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 스님을 비롯한 수행원 십여 명이 벽돌색 장삼을 입고 중앙이 아닌 옆 통로로 천천히 걸어서 단상으로 향하던 모습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설렘은 멈추지 않았다.
이제나 저제나 하는 기다림 끝에 얻은 결론은 ‘천천히 걸어라, 천천히 씹어라’였다. 어디선가 읽거나 들었던 것 같은 가르침.
강연장을 나온 우리 일행은 한동안 말없이 걸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했던가. 우리의 침묵은 그런 의미를 담고 있었다. 막 육십 대에 이른 우리는 나름 슬기롭고 지혜로운 노년을 준비하자는 공통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나는 누구보다 마음공부가 필요한 때였다.
평생을 살아온 고국 땅을 떠나 결혼한 딸네와 살림을 합치기 위해 미국 이주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이십여 년의 독신생활을 접고 가족들과 어울려 살자면 무엇보다 마음을 잘 다스릴 수 있어야 했다. 말하자면 족집게 과외수업으로 한 수 배우자는 속셈이었다.
나는 그 해 끝머리에 미국행 비행기를 탔고 낯선 곳에 정착하느라 틱낫한 스님에 대한 기억은 잊고 살았다. 사소한 일로 딸과 부딪쳐 며칠 집안에 냉기가 돌기도 하고 미처 정들지 않은 사위와의 불편한 관계로 마음을 앓기도 했다. 그때 내게 위안처가 되었던 곳은 아이들이 뒤뜰에 마련해 준 텃밭이었다. 갓난 손녀를 돌보는 틈틈이 나가서 물을 주고 땅을 일구며 흙냄새의 향기로움을 알게 되었다. 기다리던 봄이 되자 서울에서 마련해온 온갖 작물을 파종하고 그 자라는 모양을 지켜보며 스스로 마음을, 감정을 다스리는 법을 배웠다.
지난 1월 틱낫한 스님이 입적했다는 뉴스를 접하자 잊고 지내던 스님의 말씀이 기억의 수면 위로 떠올랐다. ‘땅의 기운을 느끼며 천천히 걸어라. 물을 마시거나 음식을 먹을 때 그것이 내 앞에 놓이기까지의 기원을 생각하며 천천히 씹어라.’
돌이켜보니 나는 어느 틈에 스님의 말씀 일부분을 몸으로 살고 있었다. 성격이 급한 나는 아직도 땅의 기운을 느낄 사이 없이 빨리 걷는다. 그러나 식탁에 앉아 감사기도를 드릴 때면 음식이 내 앞에 놓이기까지 수고한 많은 이들을 생각한다. 그때만 해도 젊었던 우리는 스님의 그 깊은 뜻, 느림의 숨은 뜻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것이다.
<
김관숙 /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