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 수준이냐, 아니면 큰 규모의 경기 침체냐.’
최근 월가에서 나오는 비관적인 전망 가운데 하나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이달 초 0.5%포인트의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한 데 이어 6월과 7월에도 0.5%포인트씩 금리 인상을 예고한 가운데 과도한 금리 인상이 결국 경기 침체로 몰아넣을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그 정도가 심하냐 아니냐만 남아있다는 것이다.
무디스애널리틱스는 5월 셋째 주 주간 시장 전망에서 “연준이 충분히 공격적으로 나오지 않으면 내년에 스태그플레이션(물가상승 속 경기둔화)이 가능하기 때문에 연준은 홉슨의 선택(Hobson‘s choice)에 직면할 수 있다”며 “그것(선택)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경제를 완만한 침체(recession)로 밀어넣느냐, 아니면 그냥 가만히 있으면서 더 큰 규모의 경기 침체를 불러오느냐”라고 분석했다.
홉슨의 선택은 사실상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경우를 말한다. 마구간 입구 쪽에 있는 상태가 시원찮은 말을 빌려가든지 아니면 말든지,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는 것에서 유래했다. 연준 안팎에서는 연착륙 가능성을 운운하지만 실제로는 경기 침체를 피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실제 고물가는 소비자들의 수요를 갉아먹고 있다. 무디스에 따르면 현재 미국 가계는 지난해와 비교해 같은 물건과 서비스를 사는 데 월 평균 311.78달러를 더 지불하고 있다. 1년이면 단순 계산으로 3,600달러가 넘는 돈이다. 급여가 오르고 있지만 물가가 더 빨리 뛰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금은 아니어도 연말이나 내년 들어서는 미국 가계의 소비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다.
4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여전히 8%대인 8.3%를 기록했고 생산자물가지수(PPI)는 11%에 달했다. 떨어지지 않는 PPI는 결국 기업 마진을 줄이고 비용 전가를 통해 소비자의 부담 증가로 이어지게 된다는 게 월가의 시각이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조차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국의 록다운 등을 거론하며 “연착륙을 달성하기는 꽤 어렵다”고 시인했을 정도다.
시장의 분위기도 비슷하다. 13일 뉴욕 증시가 반등하기는 했지만 이는 하락장 속의 반짝 상승을 뜻하는 ‘베어마켓 바운스’라는 분석이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의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이 16.8배로 지난 20년 평균치인 15.7배를 웃돈다며 S&P500이 더 하락할 수 있다고 봤다. 월가에서는 경기 침체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스태그플레이션은 피하지 못할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모하메드 엘 에리언 알리안츠 선임고문은 “연준의 대응이 너무 늦었다”며 “미국에 스태그플레이션이 올 것이라고 보고 있다”고 강조한다.
중요한 것은 평범한 시민들의 삶이다. 올해 집 월세를 재계약하려면 대략 1,000달러는 추가로 얹어줘야한다. 20~30%의 살인적인 상승률이다. 치솟은 휘발유 값에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 기름을 꽉 채우면 100달러가 넘게 든다는 볼멘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온다.
상황이 이러니 연준은 어떤 상황에서라도 당분간 긴축을 이어갈 수밖에 없다. 0.75%포인트의 자이언트스텝은 아니겠지만 계속해 금리를 올릴 것이다. 연준의 본격적인 금리 인상과 양적 긴축(QT)은 안 그래도 위축된 수요를 추가로 억제한다.
특히 긴축 과정에서 나오는 주가와 암호화폐 가격 폭락, 주택 가격 안정화는 부의 효과를 낮춘다. 미국이 2분기 연속 경제성장률 마이너스라는 교과서적 의미의 경기 침체를 피할 수 있더라도 미 국민들의 소비 감소와 그에 따른 경기 둔화는 절대로 피할 수 없다.
안전벨트를 단단히 매야할 때다. 한국 입장에서는 연준의 잇따른 금리 인상으로 인한 글로벌 자금 이동과 함께 미국의 경기 둔화 혹은 침체에 따른 수출 감소를 걱정해야 한다.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시장 관계자들의 말은 잠시 접어두는 게 좋다. 그 누구도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국의 코로나19가 언제 끝날지, 인플레이션을 더 일으키지 않는 중립 금리가 어디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
김영필 서울경제 뉴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