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폴 크루그먼 칼럼] 한껏 푸르른 도시

2022-05-18 (수)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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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주 의회 보궐선거는 전국적인 관심사가 아니다. 특히나 진보적 성향의 민주당 강세 도시인 샌프란시스코에서 치러지는 선거는 결과가 뻔하다는 일반적인 인식 탓에 더더욱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 한다.

하지만 대도시 주택정책에 초점이 맞춰진 이번 선거는 달랐다. 뿌리 깊은 지역 이기주의(NIMBY: Not in My Backyard) 정서에 맞서 주택건설을 확대하고 대도시 인구밀도를 높이는 등 님비의 정반대 개념인 이른바 임비(YIMB: Yes in My Backyard) 정책을 추진하겠노라 공언한 후보가 승리를 거두자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이 쏟아졌다. 샌프란시스코 보궐선거를 통해 드러난 임비의 강세가 전국적인 도시정책의 방향성을 시사하는 것이라면 앞으로 경제와 환경 분야에서 거대한 긍정적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우선 임비주의가 힘을 얻게 된 배경부터 살펴보자.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 직전까지만 해도 미국 대도시들의 환경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좋았다. 도시가 안고 있는 사회문제가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지만 크게 줄어든 것은 어김없는 사실이다. 특히 뉴욕의 경우 살인은 1990년 수준에서 무려 85%가 줄었다. 동시에 지식기반 경제는 기업들을 고도로 교육화된 메트로폴리탄 지역으로 끌어들였다.


잠시 동안, 팬데믹은 도시의 이점을 약점으로 되돌리는 듯 보였다. 팬데믹 초기 몇 달간, 뉴욕이 코로나바이러스 핫스팟으로 떠오르자 이곳의 높은 인구밀도가 건강에 해가 된다는 주장이 난무했다. 그러나 바이러스에 어떻게 대응해야하는지에 관한 정보가 쌓이고, 특히 백신이 보급되면서 인구밀도가 높은 메트로폴리탄 지역은 지방에 비해 훨씬 안전해졌다. 이런 차이를 만들어낸 거의 유일한 이유는 마스크 착용과 백신접종에 대한 주민들의 적극적인 수용태도였다.

범죄, 특히 총격이 팬데믹 기간에 급증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건 대도시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게다가 지금도 뉴욕의 범죄율은 루디 줄리아니가 시장으로 재직 중일 때에 비해 현저히 낮다. 주택시장을 바로미터로 삼을 경우, 대도시의 매력은 이미 오래전에 반등했다. 팬데믹 절정기에 뉴욕의 렌트는 크게 떨어졌지만 지금은 완전히 상향세로 돌아선 상태다.

바로 그게 문제다. 도시는 거주하고 일하기에 적합한 곳일 뿐 아니라 환경에도 좋다. 그러나 집값이 너무 오르는 게 문제다. 새로운 주택건설에 대한 지역차원의 반대가 주 원인이다.

이런 반대는 어디서 오는 걸까? 미국인들의 머릿속에는 밀도가 촘촘한 도시의 삶은 본질적으로 반 이상향적이라는 견해가 자리하고 있다. 아칸소 출신의 공화당 상원의원 탐 카튼은 많은 사람들이 매력적으로 생각하는 도시의 삶을 마치 끔찍한 일인 양 묘사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민주당은 당신이 도심지역의 고층건물에 살면서 걷거나 지하철을 이용해 출퇴근하기를 원한다”라는 그의 트윗에 조롱 섞인 반응이 쏟아진 것이다. 그러나 아마도 많은 미국인들이 그와 동일한 견해를 갖고 있을 것이다.

도시생활에 대한 반대는 부분적으로 지역이기심을 반영한다. 부촌에 거주하는 부유한 주민들은 주택공급에 제한을 가하는 방식으로 주택가격을 높은 수준에 묶어두고 싶어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대의 상당부분은 밀도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데서 나온다. YouGov의 최근 서베이에 따르면, 미국인은 네명 당 세명 꼴로 주택 사이의 간격이 벌어질수록 환경보호에 좋다고 믿는다. 그렇게 믿을만한 이유가 있다. 농촌은 더 말할 나위가 없지만, 나무가 많은 교외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도 도시의 고충건물 거주자에 비해 더 많은 녹지에 둘러싸여있다. 그렇다면 미국 전체로 볼 때 모든 사람이 드문드문 떨어져 살수록 녹지가 늘어날까?

천만의 말씀이다. 언뜻 상식처럼 들리는 이 같은 견해는 구성의 오류를 갖고 있다. 맨해튼의 1평방마일 공간에 거주하는 7만 명을 전형적인 교외의 인구밀도를 지닌 곳에 분산시킨다고 상상해보라. 새로 옮겨진 지역에서 이들은 35평방 마일을 점유하게 될 것이다. 이들은 집을 지을 택지를 필요로 할 것이고, 항상 차를 타고 이동해야 하기에 도로를 새로 깔고 샤핑몰 등 편의시설을 갖추어야하기 때문에 뉴욕에 거주할 때 비해 더 많은 주변 녹지를 없애야한다.


인구가 밀집한 도시는 교외에 비해 주민 1인당 에너지 사용량이 적다. 거주자들의 운전거리가 상대적으로 짧은데다 걷거나 다양한 형태의 대중교통에 의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인들에게 뉴요커처럼 살라고 강요하지는 않더라도 대도시의 밀도를 높일 수 있도록 주택건설을 허용함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이 뉴요커처럼 살게 하는 것이 환경에 보탬이 된다.

도시의 밀도를 높이는 것은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 대도시에서 한층 생산적인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에 메트로폴리탄 거주자들은 호되게 비싼 주택비를 기꺼이 부담한다. 따라서 도시의 밀도를 제한하는 것은 그들의 재능을 최대로 사용하는 것을 막기 때문에 미국인들을 가난하게 만든다. 최근의 한 연구는 소수의 대도시에서 토지 이용제한을 줄일 경우 미국의 국내총생산을 3.7% 늘리는 효과를 가져 온다. 거의 연 9,000억 달러에 상당하는 가치다.

이젠 임비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도시의 밀도에 대한 반대는 엄청난 해를 불러왔다. 그 같은 반대를 줄이는 것은 놀라운 양의 선(good)을 가져온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크루그먼은 현재 뉴욕 시립대 교수로 재직중이며 미국내 최고의 거시경제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예일대학을 졸업하고 MIT에서 3년 만에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뉴욕타임스 경제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다.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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