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만파식적] 스발바르 국제종자보관소

2022-05-16 (월) 오현환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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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자치령 그린란드와 스칸디나비아반도 사이에 노르웨이령 스발바르 섬이 있다. 북극점에서 불과 1,300㎞가량 떨어진 곳이다. 섬 전체의 60%가 빙하이며 지구에서 최악 수준으로 메마르고 척박한 곳이다. 이곳 해발 130m 암반층에 수평 120m 깊이로 핵폭발, 리히터 규모 6.2 강진, 소행성 충돌에도 견딜 수 있는 강화 콘크리트로 둘러싼 터널형 창고 3개가 설치돼 있다. 핵전쟁, 기후변화 등 전 지구적인 대재앙에도 살아남을 인류의 생존을 위해 식물의 씨앗을 보관한 ‘스발바르 국제종자 보관소(Svalbard Global Seed Vault)’다. ‘현대판 노아의 방주’ ‘최후의 날 저장고(Doomsday vault)’라고도 불린다.

세계 각국의 1,400여 종자 저장고 중 유엔에서 인정한 유일한 국제 종자 금고다. 출입구가 하나밖에 없는 이곳의 문을 열려면 유엔과 국제기구들이 보관한 마스터키 6개가 모두 필요하다. 저장고 온도는 영하 18도로 유지돼 발아를 막고 신진대사를 최대한 늦춘다. 품종당 평균 500개의 씨앗이 보관되며 20년마다 새 것으로 교체된다. 관할 영역은 오곡·감자·옥수수 등 작물로 2021년 5월 기준 107만 종 이상의 종자가 보관돼있다. 노르웨이 정부와 스발바르주 정부가 저장고 소유권을 가졌지만 저장한 종자에 대한 권리는 제공한 국가에 있다. 1990년대 유엔 식량농업기구에 근무하면서 설립·운영을 주도한 미국의 농업 학자 케리 파울러 박사는 ‘저장고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코로나19 팬데믹에 이어 우크라이나 사태로 지구촌에 식량 위기의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유엔 식량가격지수는 1960년대 도입 이래 가장 높은 수준이다. 중국은 대대적인 곡물 확보에 나섰고 세계 밀 수출 1위의 러시아는 식량을 전쟁 무기화할 태세다. 식량 공급 불안이 현안으로 떠오르자 미국은 최근 파울러 박사를 ‘세계식량안전 특사’로 임명했다. 식량 공급 문제에 대해 국내외를 아우르는 중대 안보 문제로 인식하고 대책 마련에 나선 것이다. 우리나라의 곡물 자급률은 20% 수준으로 떨어졌다. 식량 안보 위기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에 대비해 우리도 해외 식량 기지 건설 등 다각도의 대책을 세워야할 것이다.

<오현환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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