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우물 안 개구리’ 벗어날 때…

2022-05-16 (월)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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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세계인들에게 어떻게 비쳐지고 있을까’-. 한국인들의 끊임없는 관심사로 보인다.

기적의 나라다. 전쟁의 참화를 딛고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이룩했다. 자체 브랜드를 가진 나라로 전자, 반도체, 자동차, 건설, 조선, 철강, 석유화학, 더 나가 방위산업에서도 세계 톱 수준이다.

그뿐이 아니다. K-팝의 나라로 소프트 파워 초강국이다. 한류는 21세기 글로벌 대중문화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을 정도다.


그러니까 경제대국에, 문화선진국으로 세계인들은 대한민국을 바라보고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많은 한국인들의 생각이 아닐까. 하기는 대한민국은 유엔이 인정하는 선진국이다. 지난해 7월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이 기구 설립 57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을 개발도상국 그룹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분류했으니 그런 자부심을 가질 만도 하다.

국제정치 무대로 시선을 돌릴 때 거기에는 다른 한국의 모습이 드러난다. 고립된 채 주변부에서만 서성이는 정체성이 모호한 존재로.

그 한국을 아시아타임스는 이렇게 묘사했다. “지정학적으로 이형(異形)적 존재다. 이제는 경제대국으로 세계의 열강으로 부상하고 있다. 거기다가 미국의 오랜 동맹국이다. 그 한국은 그런데 중국과 친밀하다 못해 굴종적이다. 덩치 값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아시아지역의 지정학적 환경조성에 제 목소리를 못 낸다. 결기도, 자긍심도 없는 그런 나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을 지나치게 비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반드시 그렇다고만 볼 수 없다.

우크라이나사태가 발생하자 한국정부가 보인 반응이 그렇다. 대러시아제재에 국제사회의 압력에 마지못해 뒤늦게 합류했다. 그리고 러시아의 경제보복이 무서워 우물쭈물하는 자세로 일관해왔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관, 독재세력에 의한 민주체제 침탈 등의 문제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다. 그저 얄팍한 경제논리에 매몰돼 우크라이나를 돕는 흉내를 냈을 뿐이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대통령의 화상연설과 관련해 대한민국 국회가 보여준 행태는 한국정치, 외교의 후진성을 전 세계에 알린 낯 뜨거운 자화상이었다. 300명 국회의원 중 화상연설을 시청한 의원은 50여명이 고작으로 그나마 전화를 하는 등 딴전을 피우고 있었다.


남의 일에는 도통 관심이 없다. 주요 국제쟁점에는 항상 모호한 입장만 보일뿐이다. 오직 관심은 돈으로, 한국에서 전쟁이 나면 누가 도와주겠지 철석같이 믿는 나라가 대한민국임을 은연 중 만천하에 알린 것이다.

어디에서 비롯된 현상일까. 그동안 국정을 담당해온 문재인정권의 586 운동권세력 특유의 ‘폐쇄적 소국(小國)의식’에서 그 답은 찾아지는 것은 아닐까.

‘현 한국 사회에는 동일 사안에 상반된 팩트가 존재한다. 두 개의 진실이 존재하는 거다. 조국 사태가 그렇고 세월호, 천안함, 북한 핵이 그렇다.’ 한 국내 언론의 지적이다.

‘집단적 갈등에 의해 진실이 왜곡된다. 각자 보고 듣고 싶은 사실만 선택한다. 그리고 다수의 힘으로 상대의 의견을 억압한다.’ 윤석열정부 출범과 함께 화두로 떠오른 ‘반(反)지성주의’에 대한 풀이다.

지성은 사물을 옳게 판단하는 지적 능력이다. 그런데 한국사회에서는 그와 반대라는 지적이다. ‘날조된 서사’를 참으로 믿으며(아니, 그보다는 진실인 양 목청을 높여 주장하며) 반대의견을 철저히 배격하는 일종의 광기가 지배하는 그런 사회가 한국이라는 거다.

586 주사파 문재인 정권의 모화종북(慕化從北)의 외교안보노선도 그렇다. 그들이 보기에 대한민국은 애당초 태어나지 않았어야 하는 나라다. 그게 그들만의 팩트다. 그런 그들의 눈에는 급변하는 국제정세는 들어오지 않는다. 국가의 운명을 큰 봉우리, 중원대륙과 한반도로만 국한해 바라본다. 일국주의적 폐쇄적 민족주의가 그들이 지닌 세계관이다.

중국과 운명공동체임을 복창하며 오로지 북한의 김정은에게만 ‘몰빵’하다시피 한 ‘문재인 표 외교안보 정책’은 바로 그 ‘짝퉁 이데올로기’에서 출발한 것으로 ‘폐쇄적 소국인식’은 그 부산물로 보인다.

대한민국은 이제 말 그대로 선진 파워다. 경제력은 세계 10위, 군사력은 6위권에 진입했다. 단순히 하드웨어만 선진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시민의식도 단연 선진수준이다. 인권이 짓밟힌다. 자유가 침해당한다. 홍콩, 우크라이나 등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에 분노하는 한국의 여론이 그 사실을 말해준다.

한국은 이제 그 지긋지긋한 ‘폐쇄적 소국인식’에서 벗어나 글로벌중추국가로서 나름의 일관된 가치관과 정체성을 가지고 국제사회를 향해 제 목소리를 낼 때가 됐다.

보다 업그레이드 된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자유민주주의 가치관을 공유하는 나라들과 함께 하는 거다. 그리고 상황에 따라서는 책임 있는 국제사회 당사자로서 땀뿐만 아니라 피도 함께 흘릴 각오도 되어 있어야 하는 거다. 과거 6.25의 아픈 경험이 있는 한국으로서는 특히. 푸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침공, 호시탐탐 대만침공의 기회를 엿보고 있는 시진핑의 중국, 그 틈새에서 핵 도발을 일삼고 있는 김정은의 북한, 급변하는 국제정세는 더더욱 대한민국에게 그런 자세를 요청하고 있다.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나 세계를 향한 외교안보정책의 선진화. 이는 윤석열 정부의 최우선적 과제라는 생각이다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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