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단행했을 당시, 모스크바의 패전 가능성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블라디미르 푸틴은 우크라이나 군에 비해 열두 배나 많은 국방예산의 뒷받침을 받는, 현대화된 정예군을 거느린 듯 보였다. 미군과 달리 사회정의에 대한 ‘의식’이 없고 ‘여성화’되지 않은 러시아군의 월등한 전투력에 관한 테드 크루즈의 환상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조차 푸틴의 신속한 승리를 예상했다.
우크라이나가 마치 기적처럼 러시아의 초반 공세를 물리친 후에도, 장기전에 대한 전망은 회의적이었다. 개전 이전의 러시아 경제는 우크라이나에 비해 여덟 배나 큼 몸집을 지니고 있었다. 서방 제재로 러시아 경제가 타격을 입었다고는 하지만 우크라이나 역시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탓에 양 측의 격차는 오히려 더 벌어졌을 수 있다. 따라서 풍부한 자원을 지닌 러시아가 장기적인 소모전에서 결국 승리를 거두리라는 것이 일반적인 예상이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듯싶다. 푸틴이 전황을 어느 정도나 알고 있는지 아무도 단언하지 못한다. 그의 관리들은 과연 그에게 진실을 전할까? 하지만 러시아가 서방을 향해 심각하면서도 애매한 협박을 퍼붓고, 폴란드와 불가리아에 천연가스 공급을 중단하는 등 자기 파괴적인 성질을 부린 것은 이제 시간이 더 이상 러시아 편이 아니라는 사실을 모스크바에 있는 누군가가 알고 있음을 시사한다. 미국의 관리들도 낙관적인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러시아의 공격을 막아내는 정도가 아니라 우크라이나의 완승 가능성을 입에 올린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대답은 미국이다. 직접 전투에 참가하진 않았지만, 지금 미국은 진주만 공습 한 해 전에 했던 일을 다시 하고 있다. 한 마디로 우리는 우방국들과 협력해 자유의 수호자들에게 전쟁을 계속하는데 필요한 군수품을 제공하는 ‘민주주의의 무기고’ 역할을 하고 있다.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 1940년의 영국은, 2022년의 우크라이나처럼 도저히 막을 수 없을 것만 같던 적을 일단 멈춰 세우는데 성공했다. 영국 침공에 앞서 제공권 확보에 나선 루프트바페(독일 공군)를 RAF(영국 공군)가 물리친 덕분이었다. 하지만 1940년 말 영국은 또 다시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 무기와 식품 및 오일 등 전쟁에 필요한 물자를 들여올 재정적 여력이 바닥이 났기 때문이다. 프랭클린 델라노어 루즈벨트 대통령은 곤경에 처한 영국에 막대한 양의 무기와 식품을 제공하는 무기대여법으로 대응했다. 이같은 지원은 전세를 완전히 뒤집기에는 충분치 않았지만 윈스턴 처칠에게 버틸 힘을 주었고, 결국 연합군 승리의 디딤돌이 되었다.
이제 무기대여법이 부활했고, 대규모 군사지원이 미국뿐 아니라 많은 우방국들로부터 우크라이나로 흘러들어가고 있다. 바로 이 지원 덕분에 지구전의 셈법은 푸틴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돌아가고 있다. 러시아의 경제가 우크라이나에 비해 큰 게 사실이지만 미국과는 상대가 안 되고 서방국들의 경제를 한데 합친 것과도 비교가 안 된다. 이처럼 제한된 경제기반 탓에 러시아는 전쟁에서 입은 손실을 대체할 여력이 없다. 예를 들어, 서방측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 전투에서 러시아가 2년간의 생산량에 해당하는 탱크를 잃었다고 믿는다.
이와 대조적으로 우크라이나군의 무장은 날로 개선되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가공할 첨단 중화기가 들어오기 때문이다. 의회가 바이든 대통령이 요청한 330억 달러 상당의 우크라이나 추가지원을 승인할 경우 서방측의 전체 지원액은 러시아의 연간 국방비와 맞먹는 수준에 도달한다.
다시 말해 필자가 앞서 지적했듯, 시간은 이제 우크라이나의 편인 듯 보인다. 만약 러시아가 눈부신 기동작전으로 우크라이나군의 주력 부대들을 포위해 이제까지 놓쳤던 극적인 반전을 끌어내지 못한다면 힘의 균형은 계속 우크라이나에 유리한 쪽으로 이동할 것이다.
여기서 두 가지만 확실히 해두자. 첫째, 만약 우크라이나가 정말 이긴다면, 그것은 모든 자유진영의 승리가 될 것이다. 전쟁을 꿈꾸는 자들과 전쟁범죄자들은 멈칫댈 것이고, 푸틴의 열혈 팬이었던 서방측 내부의 민주주의의 적은 거친 몸짓과 진정한 힘 사이의 차이에 관한 객관적 교훈을 배우게 될 것이다. 둘째, 승리가 현실화할 경우 그 공로는 가장 먼저 우크라이나 국민에게 돌아가야 하지만, (비록 전부가 아닌 게 아쉽긴 해도) 일부 서방국들의 대담하고 효과적인 지도력이 없었다면 승리는 불가능했을 터이다.
보리스 존슨 총리를 둘러싼 구구한 비난 여론에도 불구하고, 영국은 이번 위기 내내 서방의 굳건한 반석이었다. 폴란드를 비롯한 동유럽 국가들도 러시아의 위협에 굴복하지 않고 우크라이나 지원에 동참했다. 조 바이든은 서방의 결속을 유지하고 우크라이나에 필요한 무기를 제공하는 등 믿기 힘든 일을 해냈다.
이전의 미국 대통령들은 자유에 관한 명연설을 남겼다. 그중에는 “이 장벽을 제거하라”거나 “나는 베를린 시민”이라는 독일어 연설도 있었다. 물론 잘한 일이다. 그러나 바이든은 단순히 큰 울림을 주는 말 대신 해리 트루먼 대통령 이후 처음으로 자유 민주주의 수호에 실질적인 방법으로 기여했다. 그가 언제쯤 이에 합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크루그먼은 현재 뉴욕 시립대 교수로 재직중이며 미국내 최고의 거시경제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예일대학을 졸업하고 MIT에서 3년 만에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뉴욕타임스 경제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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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