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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 미국의 무력사용권(AUMF)

2022-05-05 (목) 오현환 /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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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11일 납치된 미국 여객기들이 뉴욕 고층빌딩 두 곳과 충돌해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간 테러가 발생했다. 연방 의회는 대통령이 이 공격을 계획·허가·자행·방조했다고 결정한 국가·단체·개인에 필요한 모든 적절한 무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무력사용권한(Authorization for Use of Military Force)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2002년에는 대량 살상 무기 제조를 들어 이라크에 대한 AUMF 결의안까지 만들었다. 당시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무력사용권을 근거로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아프가니스탄·이라크 등을 차례로 침공했다.

AUMF는 전쟁 권한을 둘러싼 대통령과 의회 간 오랜 갈등의 산물이다. 미국 헌법은 대통령에게 총사령관으로서의 전쟁수행권을, 의회에는 전쟁선포권을 부여했다. 그러나 의회가 전쟁을 선포한 대상은 1941년 진주만을 침공한 일본뿐이었다. 한국·베트남 전쟁 등은 대통령이 자의적 판단으로 수행했다. 의회는 대통령을 견제하기 위해 1973년 미군 투입 관련 대통령의 문서 보고 의무, 군 사용의 종료 등을 규정한 전쟁 권한에 관한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이후 대통령들이 ‘위헌’이라는 입장을 취해 이 결의안의 실효성이 없었다. 1990년 이라크와 걸프전쟁을 앞두고 AUMF가 처음 만들어져 대통령의 무력 사용 근거로 활용됐다. 9·11테러 직후, 이라크 침공을 앞둔 2002년을 포함하면 모두 세 차례 의회를 통과했다. 대통령의 무력 사용에 이런 결의안들이 수시로 쓰이자 의회가 폐기·제한하려는 입법도 몇 차례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연방 하원이 1일 조 바이든 미 대통령에게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AUMF를 추가로 부여하는 결의안을 상정했다. 러시아가 핵·생화학무기를 사용할 경우 미군을 신속히 우크라이나에 파병할 수 있게 대통령에게 전권을 부여한다는 내용이다. 러시아와 중국의 비정상적 팽창주의로 냉전 종식 이후 30여 년간 지속돼온 국제 질서가 다시 요동치고 있다. 한국과 대만 등이 패권 경쟁의 전장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데도 우리 정치권은 급변하는 국제 정세를 애써 외면하고 정략적 싸움에만 매몰돼 있으니 참 답답하다.

<오현환 /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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