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이 초록을 어루만지면 향기로운 꽃이 핀다. 봄의 태양은 따뜻하다. 봄의 바람은 은혜롭다. 봄의 대지는 인자하다. 봄은 환희의 계절이다. 4월4일자 신문에는 ‘팬데믹 속 벚꽃 축제, 그래서 더 아름답다’는 기사가 올해의 벚꽃 축제를 알린다. 다음날 신문에는 전쟁 중인 러시아군이 철수한 우크라이나 소도시 부차에서 거리에 방치된 민간인 희생자의 시신을 검은색 비닐백에 수습하여 옮기는 사진이 났다.
루마니아 소설가 게오르규의 ‘25시’의 시간, 인간 부재의 상황 마지막 시간이 지나가 버린 후의 폐허의 시간, 구원해줄 수 없는 절망의 시간이다. 그래도 봄의 여신은 우리 가슴을 밝은 희망으로 만나준다. 나를 사랑의 세계로 홀씨 되어 떠나게 한다.
책장에서 한 권의 책을 열어본다. 와타니베 준이치의 ‘실락원’이다. 불륜의 사랑에 빠진 남녀가 추구하는 극한의 탐미주의를 섬세히 묘사한 이 책은 일본 전역을 실낙원 신드롬에 빠지게 만들었다. 책을 한 페이지씩 넘기며 창가에서 블랙 커피를 다 마셔갈 때쯤 박목월 선생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시인의 시를 작사로 한 ‘이별의 노래’를 흥얼거려 본다.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리/ 바람이 싸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 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한낮이 끝나면 밤이 오듯이 우리의 사랑도 저물었네/ 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박목월 시인은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를 지내던 중년시절에 제자와 사랑에 빠졌다. 가정, 명예, 모든 것을 버리고 빈손으로 그 여성과 종적을 감추었다. 얼마간의 세월이 지난 후 박목월의 아내는 그들이 제주도에 있다는 제보를 받고 찾아가 두 사람의 궁한 생활을 보게 되었다. 돈 봉투와 겨울 옷 등을 챙겨주며 위로하고 서울로 올라간 부인. 그 마음씨에 박목월과 제자는 헤어지기로 한 뒤 서로에게 사랑의 마음을 글로 써주었다. 바로 박 시인이 그 여성에게 준 시 ‘이별의 노래’이다.
바닐라 커피향이 봄향기 되어 가슴을 살포시 적신다. 인생 또한 한번 가면 되돌아 올 수 없는 바람이고 구름이다. 창밖의 노란 수선화 뒤에 나비 되어 훨훨 날아보고 싶어진다.
언제나 편안한 마음을 하게 해주는 사랑. 내 안의 고통까지 보여줄 수 있는 사랑. 어깨에 기대어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사랑, 내 눈물의 의미를 알아주는 사랑, 서로 꿈을 주는 행복한 사랑, 나는 와락 그 사랑을 껴안고 나비가 되어 꿈과 함께 훨훨 25시를 넘어 봄의 여신에게 날아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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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겸 / 뉴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