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푸틴, 히틀러 같은 인물들과 나란히 종종 또 다른 유형의 지도자들을 배출해왔다. 가망이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 국민을 단결시켜 사태의 흐름을 뒤바꾸는 지도자들이다. 1939년의 윈스턴 처칠, 그리고 2022년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 바로 그 경우다.”
포린 어페어스지의 보도다. 국가 위기 시 지도자의 리더십이 얼마나 중요한가. 이를 천착해가면서 코미디언출신 우크라이나 대통령에 대해 내린 평가다.
러시아가 침공하면 3~4일이면 함락된다. 이것이 일반의 예상이었다. 정치 초년생인 대통령에 대한 신뢰도는 극히 낮았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조차(53%) 러시아가 침공하면 항복과 함께 정권은 바로 무너질 것으로 보고 있었다.
실제 상황이 벌어졌다. 그러나 반전에, 반전의 연속이었다. 러시아군의 탱크와 장갑차가 몰려온다. 폭격이 멈추지 않는다. 수도 키이우는 함락 일보직전이다. 대통령은 그렇지만 미국의 안전철수 보장도 마다하며 떠나지 않았다. 집무실을 이동해가며 시민들과 함께 사수에 나섰다.
대통령의 용기는 국민을 하나로 만들었다. 우크라이나인들은 결사적 저항에 나섰고 전황은 당초 예상과 정반대로 전개되고 있다. 한 지도자의 용기가 기적을 만들어 낸 것이다.
포린 어페어스의 보도는 그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 대한 일종의 헌정사다. 2차 대전 시 나치 침공으로부터 자유세계를 지켜낸 처칠과 비교됨으로써 젤렌스키는 자유민주주의 수호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이와 함께 기껏해야 2류 국가 취급을 받던 우크라이나를 바라보는 세계인의 시선도 달라졌다. 자유를 지키기 위해 맨 몸으로 싸우다 시피하고 있는 의연한 우크라이나 국민에 대한 찬사가 쏟아지면서 당당한 자유민주주의세계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젤렌스키의 용기는 세계도 움직였다.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국가들, 더 나가 전체 자유세계의 단합을 불러왔다. 그리고 급기야 우크라이나 국민의 영웅적 항전에 감동한 미국·유럽연합(EU) 등 자유진영은 전폭적인 우크라이나 지원에 나섰다.
그 젤렌스키가 지난 11일 대한민국의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화상 연설을 했다. 미국, 일본, EU, 영국, 독일, 프랑스 등에 이어 24번째로 한국에 우크라이나에 대한 도움과 자유세계 수호에 함께 해줄 것을 호소한 것이다.
미국 상하원 연설 때에는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을 비롯해 상하의원들이 강당을 가득 채웠고 연설 끝엔 기립박수가 터져 나왔다. 유럽 국가들은 물론, 일본의 경우에도 의원들에다가 총리, 장관 등 500여명 참석해 경청, 자리가 모자라 서서 듣는 참석자도 많았다.
전 세계 정치인들은 그의 용기에 최대한 경의를 표하면서 함께 진지하게 지원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 국회도서관에는 그 날 몇 명이나 모였을까. 50여명이 고작이었다. 그런데다가 그나마 졸고, 딴 짓하는 국회의원이 한둘이 아니었다. 기립박수 같은 것은 아예 없었다.
썰렁한 대한민국 국회도서관의 광경. 이는 지구촌 전체로 광속으로 전해졌다.
한 러시아의 교수가 ‘젤렌스키 대통령이 연설한 모든 나라 의회 중 가장 적은 참석자 수를 기록했다’는 친절한 설명(?)에다가 ‘70여 년 전 한국과 비슷한 실존적 상황에 처해 도움을 요청한 젤렌스키의 호소가 많은 한국 정치인들에게는 들리지 않는다’는 촌평을 달아 그 광경을 트위터로 퍼트린 것이다.
6.25의 잿더미에서 자유세계의 연대와 희생으로 기사회생했다. 그 대한민국이 이제는 러시아를 압도하는 경제대국이 됐다. 그런데도 러시아 눈치나 본다. 그러면서 도움을 요청해온 우크라이나에 딴전을 피며 사리고 있다.
걸핏하면 작년 7월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1964년 이후 처음으로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분류한 것을 들먹인다. 그러면서 정작 자유세계의 일원으로서 최소한의 책무는 외면한다. 그런 비열한 모습으로 대한민국이 전 세계에 비쳐지기에 아주 안성맞춤의 계기를 대한민국의 국회의원들은 제공한 것이다.
도대체 어떤 나랏일로 그다지도 바빠 대한민국의 선량나리들은 국제 외교가의 가십거리가 되는 것도 모자라 우크라이나인들이 모욕을 느낄 정도의 외교적 쾌거(?)를 이룩했나.
답은 ‘검수완박’이란 네 글자에서 찾아지는 것 같다. 젤렌스키 화상 연설 다음 날 172석을 가진 집권 여당인 더불어 민주당은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그리고 이어 개정안으로 발의했다. 윤석열정부 출범 이 전까지를 데드라인으로.
검찰의 직접 수사권을 완전히 없애는 게 골자인 이 법안이 그렇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아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조 이후의 최대 사법개혁으로 보인다. 한 법조인에 따르면 자신의 비리를 덮기 위해 희대의 폭군 연산군이 사헌부(오늘날의 검찰)를 없앤 것과 비교될 정도라고 하니.
한 마디로 그 ‘검수완박’에 인사불성상태인 게 집권여당이다. 그러니 젤렌스키니, 우크라이나는 저 먼 우주 밖의 일로 들릴 수밖에.
어쨌거나 김여정하명법에서 공수처법에 이르는 입법폭주를 거듭해온 문재인 정권 하의 대한민국 국회는 또 한 차례 진기록을 세울 것 같다. 이번에는 형사피고인들이 직접 나서서 개혁이란 이름으로 검찰의 손발을 잘라버리는….
‘아! 아! 대한민국’소리가 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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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