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파식적] 겨울전쟁
2022-04-11 (월)
문성진 / 서울경제 논설위원
1939년 11월26일 뱌체슬라프 몰로토프 소련 외무상이 느닷없이 핀란드 대사를 불러 소련 국경지대인 마이니라에서 핀란드군이 발사한 7발의 포탄으로 13명의 소련군이 사상했다고 항의했다. 나흘 뒤 소련은 핀란드를 침공한다. 소련은 자작극에 이어 전쟁을 일으키면서 국경 인근 땅을 달라고 했다. 하지만 진짜 속셈은 핀란드를 통째로 삼키는 것이었고 그해 안에 목적 달성이 가능할 것으로 낙관했다. 그러나 핀란드는 의외로 강하게 버텼고 전쟁은 이듬해 3월까지 계속됐다.
이처럼 겨우내 전쟁이 이어져 붙은 이름이 ‘겨울전쟁’이라는 게 정설이다. 일부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당시 영국·프랑스가 연합국 대열에 동참했던 소련의 침략 행위를 덮어주려고 그렇게 불렀다는 속설도 있다. 종전을 위한 평화조약으로 핀란드가 치른 대가는 컸다. 핀란드 국토 중동부의 살라와 전체 인구의 12%에 해당되는 42만 명이 살고 있던 산업 중심지 카렐리야를 소련에 빼앗겼다. 그러나 소련은 사상자가 35만 명으로 핀란드의 5배에 달하면서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했다.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가 오합지졸 수준을 드러낸 소련군을 만만하게 보고 침공 결심을 굳혔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과거 핀란드가 소련에 맞서 싸운 겨울전쟁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다시 회자하고 있다. 미국 퀸시연구소의 아나톨 리벤 연구원은 4일 포린폴리시 기고에서 러시아의 침공을 잘 막아낸 우크라이나가 핀란드처럼 격렬한 저항의 결과로 ‘중립’ 선언에 이어 ‘독립’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폈다. 하지만 현재 우크라이나 상황이 80년 전 핀란드의 경우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미국기업연구소(AEI)는 “우크라이나가 중립을 선언한 후에도 크렘린궁은 그 이상을 바랄 것”이라고 진단했다. 더구나 러시아는 80년 전 소련보다 훨씬 더 난폭하다는 것이다. 러시아군에 의해 수백 명의 우크라이나 민간인이 살해된 ‘부차 학살’은 천인공노할 만행이다. 국제사회는 반인륜적 침략에 맞선 우크라이나인의 투지와 용기를 응원하고 있다.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만들려면 압도적 힘을 갖추고 불퇴전의 의지를 보여야 할 것이다.
<문성진 / 서울경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