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명명백백한 범죄행위이고, 끔찍한 전쟁범죄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우크라이나 침공은 푸틴의 완전한 실착이었다. 채 5주도 안되는 짧은 시간에 푸틴은 러시아군의 명성을 실추시켰고, 국가경제를 파탄 직전의 상태로 몰아넣었으며, 그가 그토록 약화시키기 원하던 민주국가 연합을 공고히 하는데 기여했다. 그는 어쩌다 이런 재앙에 가까운 실수를 저지른 것일까?
독재자 증후군이 이 질문에 대한 부분적 대답이다: 푸틴은 그가 듣기 원하는 말만 골라 하는 아첨꾼들에 둘러싸여있다. 참담한 실패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단행할 당시, 그는 러시아군의 막강한 위력을 의심치 않았고, 우크라이나인들이 기꺼이 러시아의 지배를 받아들일 것으로 확신했다.
게다가 푸틴은, 그를 우러르는 서구의 숱한 인사들과 마찬가지로 타락한 민주국가들이 효과적인 저항을 하지 못할 것이라 믿었다. 필자도 지금 미국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서방세계가 부패와 방탕으로 인해 쇠약해진 게 사실이라 우려하지만, 그건 푸틴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종류의 타락과는 거리가 멀다. 우리의 취약성은 전통적인 가정의 가치가 쇠퇴한데서 오는 게 아니라 법치와 원치 않는 선거결과에 승복하는 등의 전통적인 민주적 가치가 힘을 잃은 데에서 비롯된다.
물론 도덕적 해이가 위대한 국가를 파멸로 몰아넣는다는 아이디어의 기원은 수 세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할리웃 판 역사에 따르면, 로마제국의 멸망은 주색잡기로 날을 보내느라 야만인들을 막아내지 못했던 엘리트층 탓이다. 실제로 할리웃 역사본은 타이밍에 오류가 있지만, 이 문제는 조금 뒤에 다시 다루도록 하자.
오늘날 우익인사들은 성적 방종보다 성 불평등에 따른 국력약화에 신경을 쓴다. 폭스뉴스의 터커 칼슨은 중국군이 갈수록 ‘남성화’되어가는 반면 미군은 더욱 ‘여성화’되고 있다고 개탄한다.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은 미군 모병 비디오와 머리를 삭발한 러시아 공정대원 영상을 비교해가며 “의식화되고 맥 빠진 군”은 바람직스럽지 않다고 주장했다.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영상 속 러시아 공정 대원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싶어진다. 어쨌건 반-의식적(anti-woke)인 러시아군이 약체인 우크라이나 군을 무너뜨리지 못한 채 겪은 막대한 인명피해는 역사를 공부한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 즉 터프 가이 행세를 하며 남성다움을 과시하는 남자들과 전쟁에서의 승리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점을 재차 확인시켜주었다. 요즘의 전쟁은 그 어느 때보다도 용기와 심신의 지구력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병참과 차량 정비 및 제대로 작동하는 통신시스템과 같은 일상적인 지원 역시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우크라이나에서의 실패에 푸틴이 보인 반응은 트럼프 방식과 동일하다. 우크라이나 침공은 “계획대로 진행 중”이라며 자신의 실수를 부인하고, 이른바 ‘취소 문화’(cancel culture)에 불평을 늘어놓는다.
이제 본질적 문제인 타락과 방탕으로 돌아가자.
필자가 지적했듯 로마의 멸망을 설명하는 할리웃 역사 버전은 허구로 가득 차있다. 사실 제국의 전리품이 일부 귀족들의 호화판 생활방식을 가능하게 만든 측면이 없지 않다. 가끔 할리웃 영화에 등장하는 난교파티도 열렸을 것이다. 흥청망청 세월을 보낸 로마 귀족과 가장 흡사한 현대판 엘리트 집단이 바로 러시아 재벌이다. 그러나 사치와 방탕에 물든 엘리트층의 출현에도 불구하고 로마는 그 이후 수세기 동안 방대한 영토를 온전히 보전했다.
그러면 로마의 멸망원인은 무얼까? 역사가들은 구구한 이론을 제시하지만 확실한 한 가지 주요 요인은 정치적 정통성 확립에 기여한 규범의 붕괴와 서기 180년 이후 일부 로마인들 사이에 서로를 향한 무력사용이 빈번해졌다는 점이다.
오늘날 미국에서 진행 중인 상황과 고대 제국의 문제 사이에 구체적인 유사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몇 달도 아닌 불과 며칠 사이에 정치 엘리트들을 포함한 미국 대의정치 기구 곳곳에서 민주주의 원칙을 조롱하고, 승리를 위해선 무슨 짓이든 하려드는 작태가 속속 불거지고 있다.
선거에서 패배한 후 계속 권력을 유지하려던 전임 대통령의 시도와 그의 사주를 받은 폭도들의 의사당 난입을 우리가 얼마나 신속히 정상적인 일인 양 받아들였는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많은 사람들이 선거결과를 뒤집으려는 움직임에 가담했고, 최근 알려진 바에 따르면 그들 가운데 현직 대법관의 아내도 포함되어 있지만, 문제의 대법관은 쿠데타 시도에 관한 심리에 스스로를 배제시키지 않았다.
백악관에 그대로 머무르려는 도널드 트럼프의 시도는 허사로 끝났지만 그의 소속 정당 구성원 대부분은 그 같은 노력을 소급해 지지했다.
하지만 그게 우크라이나와 대체 무슨 상관인가? 푸틴은 힘이 빠진 서구가 그의 우크라이나 정복을 수수방관할 것으로 확신했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효과적으로 민주국가들의 연합을 이끌어냈고, 이들이 다투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면서 침략군에게 타격을 입히는데 단단히 손을 보탰다.
그러나 다음에 또 다시 이와 유사한 일이 터지면, 민주주의의 가치를 포기한 미국이 민주국가 연합체를 이끌지 않으려 들지도 모른다. 필자는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타락이라고 생각한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크루그먼은 현재 뉴욕 시립대 교수로 재직중이며 미국내 최고의 거시경제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예일대학을 졸업하고 MIT에서 3년 만에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뉴욕타임스 경제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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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