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아프신 듯
몸이 불편한 할머니 손을 할아버지가 꼭 잡고
걸어간다 한 걸음 한 걸음 아껴가며
꼭 잡았다는 말을
꼭 잠궜다로 고쳐 말한다
저 견고한 자물통을 열 수 있는 열쇠는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은행나무가
면사포 같은 결 고운 단풍잎을 골라
할머니 머리 위에 소복이 얹어 준다
‘입장’ 이화은
단발머리 나풀거리며 깡충깡충 뛰던 시절 있었을 것이다. 또각또각 구둣발소리 내며 도도하게 걷던 시절 있었으리라. 어느 눈부신 모퉁이에서 씩씩하게 다가온 성큼성큼을 만났을 것이다. 팔짱을 끼고 두려움 없이 세상 속으로 입장했을 것이다. 성큼성큼은 더러 휘적휘적 앞서기도 했을 것이다. 삶이라는 팔십 년 사탕이 녹아 막대가 혀에 닿을 때쯤 또각또각과 성큼성큼은 주춤주춤이 되었을 것이다. 속도가 빠져나간 걸음이 춤이 되다니. 어떤 이들은 퇴장을 말하지만 입장이 맞을 것이다. 누구라도 어제에서 오늘로 도착하지 시간을 뒷걸음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가을 은행나무 면사포를 쓰고 입장한 노부부가 올봄 꽃그늘로 입장하신다. 반칠환 [시인]
<이화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