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젤렌스키의 ‘선한 전쟁’

2022-03-28 (월) 마이클 거슨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크게 작게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 일요일 이스라엘 국회를 상대로 진행한 화상연설에서 이번 전쟁을 바라보는 자신의 도덕적 견해를 분명히 밝혔다. 그는 이스라엘 의원들을 향해 “국가와 국가 사이를 중재할 수는 있지만 선과 악 사이를 중재할 수는 없다”고 역설했다.

젤렌스키의 리더십 아래 선한 싸움을 벌이는 우크라이나의 국민은 애국심으로 똘똘 뭉친 채 러시아를 상대로 놀라운 자기방어의 기적을 연출하고 있다. 도덕성에 바탕 한 우크라이나의 경이로운 선전은 미국인들의 뜨거운 칭찬 세례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젤렌스키와 우크라이나인들이 내세우는 도덕성에 미국의 현직 대통령이 대단한 가치를 부여할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건 오산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조 바이든은 자유 국제주의를 냉엄하게, 그리고 현실적으로 재해석해야한다고 주장하는 민주당 내부 세력의 대변인이었다. 미국의 현 대통령은 우방국들을 대상으로 한 인도적 차원의 군사개입 원칙을 신봉하지만, 미국 국가안보와 국익에 관한 비교적 좁은 의미의 해석에 문제가 되지 않을 때에 한해 그렇다. 인도적인 가치를 중요시하지만 그건 그보다 더 중요한 현실적인 다른 가치가 나타나기 전까지의 일이다. 많은 미국인들은 이를 현명한 접근법으로 받아들인다. 반면 젤렌스키를 비롯한 미국의 파트너들에겐 선뜻 믿음이 가지 않는 미심쩍은 독트린일 수밖에 없다.

현재진행형인 우크라이나 사태를 잠시 옆으로 밀어두면 바이든은 거의 틀림없이, 그리고 항상 가차없는 현실정치의 냉혹한 실천자로 기억될 것이다. 부통령으로 재임 중이던 2011년, 그는 대규모 인명살상 가능성이 제기된 리비아 정부군의 공격으로부터 벵가지를 지켜내기 위한 나토의 군사개입에 반대했다. 그뿐 아니다. 바이든은 시리아의 알 아사드 정권과 이란정부, 블라디미르 푸틴의 러시아군 연합세력에 맞서 시리아 중동부전선에서 사투를 벌이던 시리아 반군 지원에도 강력한 반대 목소리를 냈다. 미국의 직접 개입이 국익과 안보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당시 친 시리아 연대는 화학무기를 사용했지만 이렇다 할 제재조차 받지 않았다.)


나토 회원국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현지 정부군과 민간인 조력자들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친 채 졸속하게 이뤄진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수는 앞으로 바이든이 새로운 우방국들에게 제시할 공동방위 약속의 신뢰성에 결정적인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엄연한 사실이다. 전장에 나선 우크라이나인들은 바이든 행정부로부터 기대이상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거기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워싱턴도 처음엔 대리전의 성격이 강한 이번 전쟁에서 서방의 지원을 받는 우크라이나가 기껏해야 러시아의 거친 진격을 잠시 지연시키는데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미국은 이번 전쟁을 향후 수십 년간 러시아의 위협적인 서진을 중단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인식하기에 이르렀다.

푸틴이 승리 이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듯 죽기 살기로 싸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1세기형 전쟁의 달인임을 과시하는데 실패한 푸틴은 20세기형 전쟁의 무지막지한 장인임을 보여주기 위해 참호를 깊이 파고 장기전에 돌입했다. 적을 조기에 제압해 항복을 받아낼 수 없게 되자 그는 민간인 시설까지 무차별하게 파괴하는 초토화전략으로 선회했다.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의 남부 항구도시이자 전략적 요충지인 마리우폴은 연일 이어지는 러시아의 포격으로 폐허로 변했다.

푸틴은 엄청난 화력을 동원한 이번 작전의 목표는 우크라이나의 ‘탈나치화’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전선에 투입된 러시아군의 상당수는 대학살 전략에 대한 충분한 고지를 받지 못했다. 이들은 산부인과 병원을 폐허로 만들고 민간인 아파트를 납작하게 무너뜨리는 푸틴의 인정사정없는 군사독트린을 받아들일 만큼 푸틴주의에 완전히 절여지지 않은 상태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러시아군의 사기가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쨌건 침략군과 침공을 당한 우크라이나인들 사이의 사기는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우크라이나 전에서 미국의 국익과 이상주의의 나침반은 현재로선 모두 동일한 방향을 가리킨다. 만약 미국이 과거 바이든이 종종 그랬듯 글로벌한 동맹서약을 좁게 해석하려는 자세를 취한다면 미국의 전략적 기조는 상호방위 대상국을 회원국으로 제한한 북대서양조약 제 5조의 수준으로 위축되고, 젤렌스키를 비롯한 유럽의 나토 비회원국 지도자들이 짐져야할 두려움의 무게는 가중될 것이다.

만약 미국이 이상주의의 나침반을 좇아 전략적 약속의 규모를 대폭 확대한다면 우크라이나인들이 필요로 하는 전쟁의 필수도구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나토에 가입하지 않은 우방들에게 결연한 지원의지의 신호를 보내면서 미래의 위협으로부터 나토를 보호하는데 도움을 주게 될 것이다.

선과 악의 기본구도를 통해 이번 전쟁을 바라보는 젤렌스키의 기본적 도덕성은 국제문제를 처리하는 완벽한 원칙은 아니더라도 좋은 원칙인 것만은 분명하다. 20세기에 이런 원칙을 적용했다면 대학살 사례는 현저히 줄어들었을 터이다. 지금 우리가 목격 중인 21세기의 화급한 상황은 바이든에게 새로운 사고를 요구한다. 그리고 젤렌스키가 제시한 새로운 원칙은 우크라이나의 코미디언을 우리시대의 도덕적 양심으로 띄워 올렸다.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인 그는 극빈과 예방 가능한 질병 퇴치를 위해 헌신하는 초당적 조직인 One에서 수석 고문으로 일하고 있다. 2006년까지 정책 및 전략 계획을 위한 대통령 보좌관으로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최고 보좌관이었다.

<마이클 거슨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