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6월 25일 김일성은 스탈린 블레싱 하에 남침을 단행했다. 마오쩌둥도 김일성을 지원했다. 이른바 항미원조(抗美援朝)라는 이름으로. 그러나 그럼으로써 마오쪄둥은 대만진공의 기회만 날렸다.
트루먼 대통령은 북한공산군 남침정황에서 대만을 방치, 공산세력의 수중에 넘어갈 경우 이는 태평양지역 안보에 직접적 위협이 된다는 선언과 함께 제 7함대를 대만해협에 파견한 것이다.
푸틴이 마침내 우크라이나 침공을 단행했다. 동시에 높아가고 있는 것은 시진핑의 대만침공 우려다. 큰 그림으로 보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일종의 성동격서(聲東擊西) 전략일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되면서.
‘아니 그와 반대로 봐야 하지 않을까. 푸틴의 우크라이나침공은 오히려 시진핑의 대만침공 계획에 큰 차질을 주고 있다.’ 카운슬 온 포린 릴레이션의 데이비드 삭스의 주장이다.
그는 70여 년 전 한국전쟁의 뒷이야기를 소환하면서 시진핑은 푸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침공을 지원함으로써 대만해협에 깔린 중국의 이해를 스스로 져버리고 있다는 분석을 한 것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그렇지 않아도 중국의 대만침공가능성에 대한 경각심만 높여왔다,
‘궁극적으로 러시아는 사이드 쇼에 불과하다. 문제는 중국이다. 미국이 정작 대비해야 할 사태는 중국의 대만침공사태다. 미국이 러시아의 위협에 대처해 유럽에 전략자산을 집중 배치하면 그 틈을 타 중국은 대만공략에 나설 수 있다.’ 그 동안 워싱턴을 지배해온 주 논리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날로 위기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도 미군파병계획은 없다고 못 박은 바이든 대통령발언에서도 그 경각심은 드러난다.
군사력에 관한한 러시아는 여전히 초강대국이다. 그러나 러시아의 GDP는 1조6,500여억 달러로 한국, 캐나다에도 못 미치는 세계 10위권 밖이다. 쇠락하고 있는 파워, 러시아는 최첨단의 초강대국 대열에서 탈락한지 이미 오래다.
반면 중국의 GDP는 러시아의 10배에 이른다. 러시아는 찰나적 존재이고 장래의 대적은 중국이다. 그리고 세계 경제의 중심은 더 이상 유럽이 아닌 인도태평양지역이다. 이 같은 진단과 함께 워싱턴, 도쿄, 브뤼셀은 우크라이나 사태에도 불구, 대만상황에 더 촉각을 세워왔다.
이 정황에서 이루어진 것이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다. 이는 70여 년 전 공산세력의 남한 침공이 자유민주주의 서방의 결속력을 강화시킨 것처럼 중국의 대만침공 시 미국과 동맹세력의 보다 강력한 대응을 불러올 것이라는 지적을 한 것이다.
진공결정에 앞서 푸틴이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의 친러시아 세력이 세운 자칭 독립국인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루간스크인민공화국’(LPR)의 독립과 주권을 인정한 것도 그렇다. 중국으로서는 오히려 아주 위험한 전례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만일의 경우 미국도 대만을 독립국으로 인정하고 독립보장을 위한 평화유지군으로 미 7함대를 파견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
“…스탈린은 베를린 봉쇄라는 악수를 둔 다음 해에 또 다른 실수를 저지른다. 김일성의 남침계획을 승인한 것이다. 미국의 의지를 오판한 것이다.” 70여 년 전의 한국전쟁이 이번에는 포린 어페어스지에 의해 소환됐다.
과거 미-소 냉전시대 그 주요 고비마다 크렘린은 패착에 가까운 실수를 저질렀다. 그 소련의 실수를 푸틴은 반복해 재현하고 있다는 지적을 한 것이다.
1949년 스탈린은 베를린봉쇄에 나섰다. 그러자 미국과 영국은 무제한 공수(空輸)작전으로 맞섰다. 그리고 이 사태 직후 결성된 것이 북대서양동맹(나토)이다. 그 다음해 발발한 것이 6.25다. 이는 서방의 보다 강력한 결속을 불러왔고 서독재무장도 이루어졌다. 그리고 1955년 서독도 나토의 일원이 됐다.
1956년 수에즈운하사건으로 서방동맹은 와해위기를 맞았다. 그 해 헝가리 봉기가 발생하자 소련은 무자비한 진압에 나섰다. 그 상황을 맞아 서방은 다시 결속, 나토는 더 강화됐다.
1968년 프라하의 봄, ‘인간의 얼굴을 가진 사회주의’를 제창하는 자유화 움직임이 체코에서 일자 소련은 무력진입에 나섰다. 1980년에는 폴란드에서 자유노조운동이 전개되자 크렘린은 역시 무력진압 위협을 하고 나섰다. 그리고 1979년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이 사태마다 서방은 재결속되고 소련의 위상은 오히려 추락하면서 결국 붕괴되고 말았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도 같은 맥락으로 백파이어만 불러오고 있다는 지적이다. ‘뇌사판정’을 받았던 나토가 강화되고 중립국이었던 스웨덴, 핀란드 등도 나토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동시에 믿을 수 있는 동맹으로서 미국의 위상만 새삼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푸틴의 치명적 실수는 우크라이나국민의 항전의지를 과소평가한 것이다.’ 계속되는 포린 어페어스지의 지적이다.
‘전광석화 같은 진격으로 키예프를 점령하고 크렘린이 임명한 괴뢰정부를 세운다.’ 이 푸틴의 계획은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반러시아, 무장저항운동 확산을 불러와 우크라이나는 자칫 ‘푸틴의 아프가니스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미국 등 서방세력의 강력한 지원을 받는 우크라이나에서의 무장저항운동은 카자흐스탄 등 다른 러시아 영향권 하의 국가들은 물론, 러시아 본토에도 파급될 가능성까지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는 것이다.
푸틴이 일으킨 우크라이나 전쟁, 그 전쟁은 아직 시작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
옥세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