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무리수, 러의 자충수 ‘우크라 사태’
2022-02-25 (금)
김재천 서강대 국제정치학 교수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고는 해도 러시아는 여전히 강대국이다. 세계 최강 수준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고 기초과학과 우주기술이 탄탄한 에너지 강국이다. 냉전기에는 초강대국의 지위를 놓고 미국과 경쟁하기도 했지만 과거 다른 강대국의 침공에 고초를 겪은 적도 많다. 14개 국가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세계 최대국 러시아에 완충지대 구축은 ‘사활적’ 이익에 해당한다. 동서로 대서양과 태평양을, 남북으로 멕시코와 캐나다를 맞대고 있는 미국과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러시아는 소련 연방을 구축하면서 중앙아시아 대부분과 발트 3국을 복속했고 동유럽을 위성국가로 만들었다. 국경선 서남쪽으로 거의 완벽에 가까운 완충지대를 확보했지만 소련 연방의 해체로 다시 순망치한의 상황을 맞이하게 됐다.
소련의 해체가 임박했던 1991년 미국은 당시 미하일 고르바초프 서기장에게 독일 통일 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동진(東進)은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지만 이후 나토는 다섯 차례에 걸쳐 동진했다. 발트 3국과 동유럽의 나토 가입은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스탈린의 고향 조지아와 키예프 공국에서 갈라져 나온 형제국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수용할 수 없었다. 2008년 친러 자치구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조지아와 전쟁을 벌였고 2014년 우크라이나의 혼란을 틈타 크림반도를 빼앗았다.
물론 미국이 러시아 주변국의 나토 가입을 종용한 것은 아니다. 완충지대를 만들어 세력권을 확보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러시아의 전형적인 강대국 정치 때문에 주변국들은 안보 위협을 느꼈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나토에 가입하며 서진(西進)했다고 할 수 있다. 냉전 시대 ‘봉쇄정책의 아버지’ 조지 케넌은 “러시아는 왜 주변국을 꼭 속국으로 만들어야만 하냐”고 비판한 적이 있다. 그런 케넌조차 “나토의 확장이야말로 탈냉전 시대 미국 외교정책의 ‘가장 치명적 실수’이며 러시아를 우리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몰아갈 것”이라고 했다. 나토의 동진은 블라디미르 푸틴과 같은 ‘스트롱맨’이 ‘제국’ 러시아의 향수를 자극하며 장기집권할 수 있는 구실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은 러시아의 안보 우려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나토 확장을 추진하는 무리수를 뒀다.
러시아 역시 자충수를 두고 있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접경 지역에 대규모 군대를 동원해 전쟁을 위협하고 있다. 푸틴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첫째, 우크라이나를 러시아 세력권에 가둬두는 것이다. 그런데 푸틴의 정책은 우크라이나를 완전한 반러 국가로 만들고 있다. 크림반도 합병 이전만 하더라도 친러 정치인이 우크라이나 의회의 다수 의석을 차지한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동쪽 돈바스 지역의 친러 분리주의 세력을 지원하면 할수록 우크라이나는 반러 민족주의로 똘똘 뭉쳐 호시탐탐 러시아 세력권 이탈을 도모할 것이다. 둘째, 나토의 롤백(rollback·퇴각)과 무력화다. 나토는 최근 무용론이 나올 정도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오죽하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나토는 ‘뇌사’ 상태라고 했을까. 그런 나토가 단일 대오를 형성하며 일사불전의 결의를 다지고 있다. 전통적인 비동맹 중립국인 핀란드와 스웨덴도 나토 가입을 저울질하고 있다니 푸틴의 강공책이 오히려 나토 강화와 확장의 계기가 되고 있다.
지구촌은 푸틴이 두드리는 전쟁의 북소리에 초긴장 상태다. 대중 견제가 발등의 불인 미국에 사활적 이익도 아닌 우크라이나를 놓고 러시아와 장기 대치하는 상황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러시아 역시 강공 일변으로는 세력권 보존이 어렵다는 것을 깨달아야한다. 미러 양국의 전략적 타협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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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천 서강대 국제정치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