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경찰이 지난 일요일, 수도 오타와의 앰버서더 브리지에서 점거농성을 벌이던 반 백신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디트로이트와 윈저를 연결하는 앰버서더 브리지는 하루 3억 달러에 달하는 국제교역 상품이 오가는 캐다다의 핵심 상업로이다. 그러나 시위대는 다른 주요 교량들을 봉쇄한 채 오타와의 일부 지역에서 점거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이 같은 교란행위에 맞서는 캐나다 당국의 소극적인 태도는 미국인들의 눈에 다소 낯설게 비쳤을지 모른다. 이제 더 이상 충격적이진 않지만 여전히 놀라운 사실은 미국에서도 인종차별 해소를 외치는 시위대를 향해 마구잡이로 욕설을 퍼붓는 미국 우파의 경제적 반달리즘(vandalism)과 공공연한 겁박 행위가 사실상 용인된다는 점이다. 여기서 우리는 일부 우익 인사들이 부르짖는 ‘법과 질서’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필자가 캐나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반달리즘으로 규정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코비드-19 백신 접종의무화에 반발해 대규모 집단행동에 돌입한 캐나다 트럭기사들은 ‘자유호송대’(Freedom Convoy)라는 그럴싸한 이름으로 포장됐다. 하지만 앰버서더 교량을 점거한 시위자들 가운데 트럭기사는 그리 많지 않았다.(캐나다 전체 트럭 운전기사들의 약 90%는 백신접종자다.) 지난주 블룸버그의 한 기자는 앰버서더 브리지 양쪽에 차단막을 형성한 차량 가운데 반 트럭은 단 세대 밖에 없었고 나머지는 주로 픽업트럭과 승용차였다고 전했다. 토요일에 찍은 사진에도 상업용 트럭은 거의 눈에 뜨이지 않았다.
국경 양쪽의 트럭기사들 가운데 상당수를 대표하는 운송노조는 교량통행 차단을 강하게 비난했다. 그렇다면 이번 교량점거는 트럭기사들의 풀뿌리 봉기가 아니다. 그보다는 우익 극단주의자들을 주축으로 비교적 소수의 운동가들이 일으킨 지난해 1월6일의 미국 의사당 난입사태에 가깝다. 시위의 열기가 최고조에 도달했던 시점에 오타와 거리로 쏟아져 나온 시위자들의 수는 대략 8,000명에 불과했고, 다른 지역의 시위대 규모는 이보다 훨씬 적었다.
그러나 참여자들의 수가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위자들은 어마어마한 경제적 손실을 가져왔다. 미국과 캐나다의 경제는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특히 자동차산업을 비롯한 북미 제조업 분야는 국경 양쪽에 위치한 공장들 사이의 끊임없는 부품 흐름에 크게 의존한다. 따라서 이 같은 흐름의 차단은 생산축소, 심지어 공장폐쇄를 불러오는 등 제조업 전체에 심각한 손실을 안겨준다.
트럭기사들이 우회로를 찾아 나서면서 대체 교량마다 통행 대기차량이 기나긴 행렬을 이루는 등 앰버서더 브리지 차단이 불러온 간접경비 또한 만만치 않다. 교량봉쇄에 따른 경제비용을 수치로 환산하는 것이 결코 쉬운 작업은 아니지만 전문가들은 최소한 하루 3억 달러의 손실이 발생했을 것으로 추산한다. 여기에 시위대에 의해 오타와에서 발생한 피해액까지 합치면 ‘트럭기사’들이 초래한 경제적 손실은 수십 억 달러를 가볍게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이는 대단히 흥미로운 수치다. 왜냐하면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에 뒤이어 나온 BLM(Black Lives Matter) 시위와 관련해 보험사들이 추산한 총 손실액과 거의 비슷한 액수이기 때문이다. 당시 전국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린 인종차별 반대시위에는 연인원 1,500만 명 이상이 참여했다.
이 같은 대비는 BLM을 방화와 약탈의 아수라판으로 묘사한 우익 언론 애청자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 것이다. 필자는 아직도 뉴욕이 잿더미로 변했다고 확신하는 사람들로부터 종종 이메일을 받는다. 사실 BLM 시위는 놀랄 만큼 비폭력적이었다. 몇몇 반달리즘 케이스가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드물었고 시위 참석자들의 규모을 감안하면 경제적 손실도 크지 않았다.
이와 대조적으로, 캐나다의 시위는 시종일관 꼭 필요한 상품의 흐름을 차단하고, 대중의 생계를 위협하는 등 경제적 손실을 초래하는데 초점을 맞추었으며, 상점의 창문을 부수고 약탈하는 것 못지않게 파괴적이었다. 게다가 특정 기업을 겨냥한 스트라이크와 달리, 캐나다의 시위는 원활한 교역에 의존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무차별적인 손실을 입혔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시위인가? BLM 시위는 무고한 사람을 살해한 경찰에 대한 반응이었다. 겉으로 보면 캐나다에서 진행 중인 사태는 생명을 구하려는 의도에서 마련된 공중보건 조치를 거부하는 것이다. 물론 그것조차 변명에 불과하다. 진짜 목적은 문화전쟁이라는 우파의 아젠다에 힘을 싣기 위해 팬데믹 피로감을 이용하려는 것이다.
우리의 예상대로 미국 우파는 이를 즐긴다. 경찰의 인명살해에 항의하는 평화로운 시위를 존재론적 위협으로 묘사하는 자들은 법을 어기고 재물을 파괴하는 우익 운동가들의 거침없는 행동에 쾌재를 부른다. 폭스 뉴스는 캐나다에서 진행 중인 교량봉쇄와 점거농성 사태를 전하는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한다. BLM 주도자들을 ‘미치광이 폭도’라 부른 랜드 폴 상원의원은 미국에서도 캐나다식의 ‘도시 봉쇄’ 시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트럭기사들에게 수퍼보울 경기를 중단시키기 위한 실력행사에 나서달라고 촉구했다. (기사들은 그의 요청을 거부했다.)
시위대 강제해산을 통한 앰버서더 브리지의 재개통은 파괴적인 시위에 대해 광범위한 단속을 시작하겠다는 선언으로 읽힌다. 필자는 우리 모두가 이 순간을 기억하길 희망한다. 특히나 특정 정치인과 언론계 인사가 ‘법과 질서’를 입에 올릴 때 이 순간을 떠올렸으면 한다.
최근의 사태는 많은 사람들의 의구심을 확인해주었다. 우파에게 그들의 목적에 부합하는 불법행동과 무질서는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이를 열렬히 반긴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크루그먼은 현재 뉴욕 시립대 교수로 재직중이며 미국내 최고의 거시경제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예일대학을 졸업하고 MIT에서 3년 만에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뉴욕타임스 경제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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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