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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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격리를 마치고

2022-02-18 (금) 김지나 메릴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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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을 자가격리를 나는 세 번째 돌입했다. 첫 번째는 2020년 코로나가 들불처럼 번지기 시작했던 여름, 한국 땅을 밟았다. 그때만 해도 강남구청에서 조그마한 화분과 함께 커다란 가방에 2주 격리 동안 잘 지내라며 마스크며 세정제 등 친절한 격리 서비스를 제공했었다. 두 번째는 작년 2021년 여름이었다. 어김없이 14일 동안 격리를 해야 했고 더욱 치열해진 외국인에 대한 격리 조치가 극에 달한 해였다.

그랬는데 이번엔 정말 코로나에 걸렸다. 걸리리라는 예상은 했었다. 미국인 5명 중 한 명은 오미크론에 걸린다는 통계도 있고 증세가 일반 감기보다 약하다는 소문을 들어서인지 이왕 걸릴 거면 가장 약한 바이러스에 걸리는 게 낫지 않을까 라는 얄팍한 생각을 했더랬다.

어느 날 미국 남자가 천으로 만든 마스크를 어설프게 쓰고 반갑게 인사를 하며 내가 운영하는 샵으로 들어왔다. 뷰티샵에 웬 남정네가, 그것도 미국 성조기가 그려진 작은 천 조각 마스크를 쓴 사내가 들어오더니 다짜고짜 다가와서 “화재가 났을 때 사용하는 소화기가 어디 있냐?”며 내 혼을 쏙 빼놓던 그 순간에 난 느꼈다. 코로나에 노출이 될 수도 있겠다는 사실을….


다음 날 아침 목이 살짝 따끔했다. 곧바로 코로나 자가테스트를 했다. 아뿔싸! 코로나 양성 반응이 나왔다. 따끔했던 목은 괜찮았지만, 꼭 감기에 걸린 사람처럼 코가 맹맹했다. 콧물이 나는 것도 아니고 기침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코만 막힌 듯한 느낌이었다. 그저 타이레놀 두 알씩 하루에 세 번 식사 후에 복용했다. 의사를 만난 것도 아니고 내가 코로나에 걸렸다는 사실을 아는 정부 요인이 없으니 미국 질병 통계에 숫자가 올라가지 않았다. 아마도 나 같은 무증상이면서 셀프 격리자를 모두 통계에 넣으면 확진자 수는 어마어마할 것이다.

그날부터 10일 동안 아들과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일단 공부를 해야 하는 고등학생이 아프면 큰일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고 나 자신은 무증상이지만 아이는 심하게 아플 수 있으니 완벽한 자가격리가 필요했다. 바이러스가 잔뜩 묻은 좀비가 되었으니 그 손으로 음식을 할 수도 없고 빨래를 할 수도 없고 가족들은 그저 나를 공포의 바이러스 덩어리로 취급했다. 내려다 주는 밥을 먹고 전화로 근황을 이야기했다. 같은 집이지만 다른 층에 사는 사람처럼 대했다.

열흘 만에 세상에 나갔다. 말이 열흘이지 참 힘든 시간이었다. 한국에서 두 번의 격리는 아프지 않은 상태이기도 했지만 낯선 도시에서 느끼는 수다 삼매경이라는 맛난 양념이 있었기에 힘들지 않고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바이러스가 침투한 조금은 혼미한 상태에서 그것도 혼자서만 지하에 갇힌 생활을 하다보니 사람이 아무 일 없이 하루 24시간을 산다는 건 자아 성찰의 도를 넘어 지나치게 우울해질 수 있는 시간이었다. 자발적인 주체적 삶과 강제성을 띤 제한적인 삶은 하늘과 땅 차이임을 느꼈다.

3년째 접어든 코로나라는 자연적인 재앙을 인간의 힘으로는 막을 도리가 없다는 걸 모두가 알았다. 이제는 코로나와 함께 살 수밖에 없다는 걸 인지한 시점에서 마스크 쓰기와 백신 접종이 강제가 아닌 꼭 필요한 사람만 실행해야 한다는 생각도 조심스럽게 해본다. 독감 주사가 강제가 아니듯 말이다.

그래도 이미 코로나에 걸린 한 사람으로서 내 몸에 이미 코로나 항체가 생긴 걸 축하하고 싶다. 일하며 자유롭게 행동하는 즐거움을 이제 다시는 놓치고 싶지 않다.

<김지나 메릴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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