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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크루그먼 칼럼] 조용하지만 거센 팬데믹 분노

2022-02-16 (수)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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숱한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뉴욕시는 세계로 통하는 미국의 최대 관문이다. 이 같은 지위가 가져다주는 이익도 많지만, 세계의 통로라는 특수지위로 인해 새로운 바이러스 변종의 급속확산이라는 불이익을 당한 것 또한 사실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빠르게 치고 빠지는 오미크론 유행에 맞서 뉴욕시가 비교적 선방했다는 점이다. 병원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린 것은 사실이지만 의료체계가 무너지진 않았다. 시 당국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5일부터 올해 1월22일 사이의 코비드 사망자 수는 “고작 2,846명”에 불과했다.

2020년 팬데믹 1차 유행 당시, 많은 옵저버들은 높은 인구밀도와 대중교통 의존도 탓에 뉴욕이 코비드에 유난히 취약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코로나바이러스가 전국으로 급속히 확산하면서 이 같은 진단은 오진으로 끝났다.

이번 경우 뉴욕시는 1차 유행 때보다 강화된 대응력을 선보였다. 시민의 대다수가 예방접종을 받았고, 마스크 착용과 사회적 거리두기, 식당출입 시 접종기록 제시 등의 룰을 충실히 따랐다는 점이 부분적 이유로 꼽힌다. 미국적 기준에 비춰볼 때 뉴요커들이 상당히 책임있게 행동했다는 얘기다.


아쉽게도 미국의 전반적 기준은 대단히 불량하다.

미국은 코비드에 부실하게 대응했다. 인구에 비례한 백분율로 보면 미국인들의 코비드 사망률은 다른 경제대국들에 비해 훨씬 높다. 오미크론 유행 동안의 사망률 차이는 이전에 비해 월등히 크다. 이유가 무얼까? 많은 미국인들이 책임있게 행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치인들과 다른 공인들이 조장한 무책임에 분노하는 사람은 필자 한 사람만이 아닐 터이다. 절대다수의 대중을 위험에 빠뜨리고 국민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소수에 대해 격한 분노를 느끼는 미국인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마스크착용과 백신접종에 적대적인 세력이 휘두르는 폭력이 심심치 않게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하는데 비해 책임있게 행동하는 미국인들의 이야기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까지 나온 몇몇 서베이는 델타 유행 동안 백신접종을 받은 미국인들의 과반수가 미접종자들을 향해 미움과 분노의 감정을 품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오미크론의 거센 물결 아래에서 그들의 숫자가 크게 늘어났다거나 무책임한 동족에게 식상한 미국인들이 조용한 다수를 이루고 있다 해도 필자는 그리 놀라지 않을 것이다.

팬데믹 동안 어떻게 행동할지는 개인의 선택 사항이라는 말은 하지 마라. 필자는 과학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다. 하지만 일정한 환경에서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이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을 제한한다는 증거는 차고 넘친다. 백신 역시 확산속도를 줄이는데 단단히 한 몫 했다. 돌파감염 사례가 없지 않았지만 비접종자들이 코비드-19 위중증에 걸릴 위험을 접종자들이 대폭 낮추어주면서 의료체계의 붕괴 위기를 막아냈다.

여기서 잠시 입증책임에 관해 생각해보자. 전문가들을 100% 신뢰하지 않는다 해도 비접종 상태에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채 항공여행을 하거나 식당에서 식사를 하면 주변의 타인을 위험에 빠뜨리게 된다는 기본상식까지 거부하는 이유가 무얼까?

‘레드 아메리카’에 속한 일부 주민들은 ‘블루 도시’들이 기쁨이 없는 폭정 지역으로 변했다고 상상한다. 그러나 사실은 정반대다. 지금 지갑 안에 백신카드를, 주머니 안에 마스크를 넣고 다니는 뉴요커들은 약간의 불편만 감수하면 원하는 일을 거의 무엇이건 할 수 있다.


개인적 선택의 자유를 외치며 기본적 코비드 예방조치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좋게 보아도 타인의 안위를 무시하는 이기적인 인간이다. 최악의 경우 그들은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고의적으로 타인을 위험에 빠뜨리는 공격적 행동을 취한다. 이처럼 우리 주변의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타인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심리적 충격을 불러온다. 기내의 좁은 통로 맞은편에 누군가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앉아있거나 상점 계산대에서 마스크 없이, 혹은 마스크를 턱 아래로 끌어내린 채 당신 뒤에 바짝 붙어서있다면 어떤 기분이 들지 생각해보라.

이런 행동의 상당부분은 정치적이다. 우파 언론의 당파성 짙은 허위정보에 배를 불린 공화당 지지자들은 민주당 지지자들에 비해 비접종 가능성이 네 배나 높은 반면 장을 보러 갈 때 마스크를 착용할 가능성은 현저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허위정보의 온상인 폭스 뉴스가 지난여름부터 직원들에게 백신접종 여부를 밝히도록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미국의 팬데믹 상황은 기본적인 공중보건 예방조치를 문화전쟁의 일부로 몰아감으로써 반사이익을 챙기는 우익 정치인들과 오피니언 리더들의 추한 모습을 투영한다.

이처럼 냉소적인 도박이 행여 역효과를 내지는 않을까? 상당수의 미국인들은 팬데믹을 연장하는 불량한 행동에 분노한 상태다. 책임의식을 지닌 사람들의 조용한 분노는 간단히 보아 넘길 수 없는 정치적 힘이다.

민주당 정치인들은 정치적 스펙트럼에 상관없이 유권자 계층에 대한 비난을 삼간다. (반면 공화당 정치인들에겐 이런 거리낌이 전혀 없는 듯 보인다.) 오미크론의 기세가 꺾이고 있는 만큼 방역에 따른 제한조치를 완화하는 것은 일리가 있다. 하지만 무책임한 행동을 부추긴 정치인들에게는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새로 선출된 버지니아 주지사 글렌 영킨은 기존의 제한조치를 대폭 완화한 자신의 코비드 정책으로 이미 대가를 치르고 있다. 이런 사례들이 계속 나오기를 기대한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크루그먼은 현재 뉴욕 시립대 교수로 재직중이며 미국내 최고의 거시경제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예일대학을 졸업하고 MIT에서 3년 만에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뉴욕타임스 경제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다.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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