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동계올림픽의 국제정치
2022-01-20 (목)
이희옥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2008년 8월8일 오후 8시, 베이징에서 제29회 하계 올림픽이 화려하게 열렸다. 당시 미국에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금융위기의 그림자가 드리운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세계의 이목이 쏠린 올림픽 개막 공연에는 15세기 명나라 환관 정화의 대항해를 선보였다. 캄캄한 경기장에서 대선단을 이룬 배들이 노를 젓자 바닷길이 열렸다. 청나라가 해금 정책을 실시하기 전까지 중국이 아시아에서 아프리카 동해안까지 7차례나 원정한 해양 국가였다는 것을 일깨웠다. 이것이 육상과 해상을 연결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기 위한 ‘일대일로’ 전략의 신호라는 것은 머지않아 알게 됐다. 나아가 중국은 월스트리트에 의존하던 미국 자본주의, 미국식 가치를 비판하는 한편 중국의 국가 대전략을 가다듬었다. 이 무렵 미국도 ‘중국이 변하면 세계가 안전해진다’는 믿음을 버렸다. 이렇게 보면 미중 전략 경쟁의 서막은 이때부터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2월4일부터 16일간 베이징과 허베이 장자커우 등지에서 제24회 동계올림픽이 열릴 예정이다. 중국 스스로는 아직 개발도상국의 대국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이미 강대국으로 부상했고 중국식 세계화, 중국식 소프트 파워를 적극적으로 투사하고 있다. 이번 올림픽은 ‘중국의 길’에 대한 자신감을 고취하는 계기로 삼을 것이다. 더구나 조 바이든 미국 정부는 취임 1년 만에 지지율이 40%대로 떨어졌고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리더십마저 잃으면서 패권의 운명을 걱정해야하는 처지에 놓였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의 축제를 그대로 둘 수 없었던 미국은 ‘인권 없이는 올림픽도 없다’라며 외교적 보이콧이라는 강수를 두었다. 영국과 캐나다 등 전통적 동맹국과 우방 국가들이 미국의 결정에서 동참했지만 세계 최대의 시장이 된 중국 앞에서 일사불란한 서방의 대오는 흐트러졌다. 일부 국가들은 그대로 공식 대표단을 파견하거나 외교적 보이콧을 선언하지 않으면서 대표단을 보내지 않거나 대표단의 격을 낮추거나 대표단 대신 사절단을 보내는 등의 묘수를 찾았다. 외교적 보이콧에 명분과 실리 모두 부족한 우리도 체육 부문을 담당하는 고위급 인사의 방문으로 절충점을 모색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중국은 평창 동계올림픽에 부총리를 단장으로 하는 대표단을 보낸 바 있고, 한중 수교 30년을 맞아 양국 관계에 찬물을 끼얹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도 과거와 달리 대표단의 규모와 격에 크게 연연하지 않고 있다. ‘안정·간소·인상’이라는 기치 아래 올림픽을 치르고 이 기세를 모아 항저우 아시안 게임, 청두 하계 유니버시아드를 성공적으로 개최해 시진핑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을 내외에 과시하는 계기로 삼는 것이 급선무다. 이를 위해 중국은 확진자가 발생한 지역에 초강력 지역 봉쇄와 격리를 지속하고, 벗었던 마스크를 다시 쓰기 시작했으며, 베이징 올림픽 동안에는 현지인을 완전히 격리하는 폐쇄 루프를 설치했다. 며칠 전 올림픽 준비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경기장에 들른 시진핑 주석의 결의에 찬 표정은 비장하기까지 했다.
베이징 올림픽 축제가 끝나면 세계는 ‘강한 중국’의 탄생을 목격할 것이다. 위기관리를 정치적 업적으로 삼아 중국공산당 20차 당대회에서 시진핑 권위와 지배력은 더욱 공고화되고, 나아가 국제 질서의 규칙 수용자에서 규칙 제정자로의 위상 변화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중국의 행동 양식은 한반도에도 투영될 것이다. 올해는 한중 수교 30주년으로 양국은 다양한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중국으로서는 중일 수교 50년이자, 이스라엘·카자흐스탄 등 15여 개국과 수교한 지 3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이처럼 한중 간에는 인식 차이, 기대 차이가 있고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격상시키자는 말도 조심스러운 국내 정치의 분화가 작동하고 있다. 베이징 올림픽 이후 편승, 헤징과 균형, 거리 두기 해법이 얽힌 대중국 정책의 복합 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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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옥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