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아시아 전략, 성공할 수 있을까?
2022-01-14 (금)
김재천 서강대 국제정치학 교수
커트 캠벨은 미국 외교가에서 ‘아시아 차르’라고 불릴 정도로 아시아 정책에 정통한 권위자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무부 동아태차관보를 역임하며 ‘아시아 재균형’ 전략을 주도했고, 현재는 조 바이든 행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의 실질적인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미국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가입 여부가 정치권의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을 때 캠벨은 상원 국방위 청문회에서 다음과 같은 발언을 했다. “우리가 아시아에서 모든 정책에 성공하더라도 TPP를 해내지 못한다면 미국의 아시아 전략은 C- 학점을 받을 것이고, 다른 정책에 다 실패하더라도 TPP만 해낸다면 B+ 학점은 받을 것입니다.”
미국의 아시아 전략에서 TPP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었다. 사실 TPP는 초기 논의 과정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한 다자간 자유무역협정이었다. 하지만 미국이 적극 참여하면서 얘기가 달라졌다. 미국이 아시아에서 높은 수준의 경제통합을 주도하고 역내 경제적 관여를 강화해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기제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캠벨은 TPP가 미국의 아시아 전략의 “총아(golden child)”라고 했고, 그의 보스 힐러리 클린턴 당시 국무장관도 21세기에 “황금 표준(gold standard)”이 될 무역협정이라고 선전하며 TPP를 밀어붙였다. 그 결과 지난 2015년 10월 미국을 포함한 12개 국가가 TPP를 체결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미국 국민이 자유무역에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황금기를 구가할 때 역설적으로 미국의 중산층은 붕괴하고 있었고 소득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미국이 자랑하던 계층 간 ‘이동성’은 사라지고 있었다. 특히 백인 저소득층은 자신들의 고충을 일자리를 앗아간 자유무역 정책과 무능한 기성 정치인 탓으로 돌리고 있었다. 워싱턴 아웃사이더 도널드 트럼프는 TPP야말로 “미국 역사상 최악의 협정”이라고 탈퇴를 공언하며 민심을 파고들었고 결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트럼프는 백악관에 입성하자마자 TPP 탈퇴와 아시아 재균형 전략의 폐기를 공식화했다.
일본의 노력으로 TPP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으로, 아시아 재균형은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부활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2017년 인도태평양 전략을 미국의 아시아 전략으로 채택했고 바이든 행정부 역시 트럼프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계승해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CPTPP 참여는 여전히 난망해 보인다. TPP 없는 미국의 아시아 전략은 아무리 잘해 봤자 C+밖에 못 받는다는 캠벨이 바이든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주도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만큼 자유무역을 반대하는 미국의 국내 여론은 압도적이다.
2022년 1월1일 15개국이 참여하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 출범했다. 중국뿐 아니라 세계 경제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는 일본·한국·아세안 국가들이 가입했고 회원국의 인구 총합은 세계 인구의 35%, 국내총생산(GDP) 총합과 상품 거래, 직접투자는 세계 33%에 육박한다. 2017년 발간된 미국의 국가안보전략보고서(NDS)는 중국이 아시아에서 미국의 경제적 영향력을 감퇴시키고 국가 주도 경제발전 모델로 지역의 경제질서 재편을 도모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중국이 RCEP를 주도하지는 않았지만 RCEP가 중국의 전략 기제로 부상할 수 있는 잠재력은 충분해 보인다. 무엇보다 RCEP는 ‘지역가치사슬(RVC)’을 강화해 미국의 대 중국 ‘탈동조화(decoupling)’ 담론을 무력화할 가능성이 크다. 바이든 행정부는 2022년부터 미국이 주도해 중국에 맞설 수 있는 새로운 인도태평양 경제 틀을 구축하겠다고 했다. 지역 국가들은 미국이 CPTPP를 대체할 아시아 경제 관여의 틀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의구심을 품고 있다. CPTPP 없는 바이든의 아시아 전략은 성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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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천 서강대 국제정치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