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인플레이션
2021-10-29 (금)
김성현 성균관대 경제학 교수
가장 권위 있는 경제 주간지인 영국 이코노미스트의 헤드라인을 보면 최근 세계 경제의 주요 이슈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이번 달 헤드라인은 ‘부족의 경제(shortage economy)’와 ‘에너지 쇼크’가 장식했다. 물건이 동난 가게 진열대를 보여주는 커버 페이지는 선진국 경제 전반에 걸친 급격한 수요 증가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해서 오는 물자 부족 현상을 대변한다. 이처럼 포스트 코로나 시대 선진국의 소비 증가는 유가 인상 및 천연가스 수급 문제로 인한 에너지 쇼크와 더불어 글로벌 경제 전반에 걸쳐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고 있다.
현재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고물가 현상은 글로벌 공급망 교란에 따른 공급 측 비용 인상이 주원인으로 분석된다. 베트남 등 개도국에서 코로나 백신 보급이 늦어짐에 따라 공장들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고 이 지역에 생산 기지를 둔 글로벌 기업들의 물건 공급에 차질이 생겼다. 또한 인력 대부분이 각종 해상 운송·물류·유통 산업에 종사하는 개도국 국민의 코로나 백신 미접종으로 노동 수급에 문제가 생겨 국제 화물 운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백신 접종률이 높은 선진국에서는 늘어난 소비에 비해 그동안 미진했던 투자로 인한 생산 능력 감소와 글로벌 공급망 교란에 따른 공급 부족 현상이 물가 상승을 유발하고 있다.
최근 데이터를 보면 우리도 이러한 공급발 물가 상승을 겪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수입물가지수는 최근 몇 달째 전월 대비 2~3%의 상승률을 보이고 있다. 원자재 수입 가격이 수입 물가 상승을 주도하고 있다. 생산자물가지수도 전월 대비 0.5~1%의 상승률을 보인다. 전년 동월 대비로는 6~7% 상승한 지수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선진국에서 보이는 물자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진 않다. 수요의 급격한 증가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드 코로나 정책이 다음 달부터 점진적으로 시행되면 수요 측면에서 그동안 억눌려왔던 여행이나 외식 등 서비스 부문을 시작으로 폭발적인 보복 소비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이는 공급 측면에서의 물가 인상 요인과 더불어 인플레이션 압력을 증가시킬 것이다.
물가가 오르면 경제에는 어떠한 영향이 있을까. 소비자들은 장바구니 물가가 상승하고 같은 돈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의 양이 줄어들어 상대적 궁핍을 느끼게 된다. 물가를 계산할 때 부동산 가격은 직접적으로 포함되지 않지만 최근 급격히 오른 집값과 전셋값을 고려하면 국민의 체감 물가는 더 높을 수밖에 없다. 기업 측면에서도 늘어나는 생산 비용을 감당해야 하고, 소비자 판매 가격을 그만큼 올리지 못할 경우 수익성이 악화되고, 미래의 가격 불확실성으로 생산이나 사업 계획에 차질이 생기게 된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물가 상승에 대응하기 위해 중앙은행이 이자율을 급격히 올릴 경우이다. 이미 한국은행은 11월에 이자율을 올릴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물가 상승 추이가 내년까지 계속 이어질 것으로 예측되고, 따라서 이자율도 내년에 2~3차례 더 오를 가능성이 크다. 이자율 인상은 이미 높을 대로 높은 가계 부채라는 화약고에 불을 붙이게 될 수 있다. 가계 부채는 이번 정부 들어 급격히 증가해 이미 국내총생산(GDP)의 100%를 넘어 1,800조 원에 다다랐다. 이자율 상승이 가계 부채 증가 속도를 늦추겠지만 이미 있는 부채의 이자율 상환 부담은 늘어나게 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이자율이 0.5% 오르면 가계의 연간 이자 부담 규모는 지난해 말 대비 5조8,000억 원 많아질 것으로 예측됐다.
최근 정부는 무리한 대출 총량 규제나 DSR 규제 등으로 부동산 가격 안정과 가계 부채 감소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하고 있다. 이자율 인상으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내년 초에 있을 대선 때문에 적극적인 물가 관리 정책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한번 물꼬가 트인 인플레이션은 잡기 어렵다. 코로나는 물러가겠지만 인플레이션이 덮칠 수 있다. 하나의 위기가 가니 다른 위기가 몰려오는 형국이다.
<
김성현 성균관대 경제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