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끝이 좋아야 다 좋다

2021-10-23 (토) 장희은 / 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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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2학년 우리 여자반이 교내 합창대회에서 우승하던 순간, 아이들 모두 얼싸안고 환호하던 감격적인 기억이 있다. 당시 피아노를 그럭저럭 치던 내가 반주를 했고, 피아노를 기똥차게 잘 치고 지금은 아주 멋진 피아니스트가 된 내 친구가 지휘를 맡아 모두를 연습시켰다. 아이들 모두 고생하면서 노력했지만, 사실 우승의 비결은 내 친구가 대회 당일 아침에 어디에선가 모셔온 능력자분이 잠깐 봐주시면서 소리가 순식간에 믿을 수 없이 좋아졌던 덕인 것 같다.

관객에게는 시작과 끝만 들린다, 한소리로 시작하고 한소리로 끝나는 게 중요하다는 말씀이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다. 그 가르침대로 본 공연 때 모두 집중해서 한마음으로 시작했고, 나도 건반이나 악보 대신 거의 지휘만 바라보고 연주하며 함께 마음으로 노래했다. 그렇게 한마음으로 마지막 음을 다같이 마쳤을 때 가슴 가득하던 뿌듯함은 잊을 수 없다.

아는 과학자 하나가 논문 하나는 족히 될 법한 대량의 데이터를 꾸준히 거짓말을 하고 숨겨가며 몰래 만들었고 자기 고국으로 돌아가며 고스란히 빼돌리려다 직전에 극적으로 걸린 사건이 있다. 국가 간 데이터 유출에 학자로서의 생명이 끝날 수도 있는 심각한 연구 부정 문제였다. 이 친구는 정말 똑똑하고 일을 잘해서 부러울 정도로 좋은 연구 성과가 많았다. 하지만 마무리가 좋지 못해 결국 도망치듯 쫓겨났던 뒷모습으로만 기억된다. 그래도 능력있는 과학자이니 고국에서 새롭게 일어나겠지만, 미국에서의 모든 시간과 관계의 끝은 엉망이 되었다. 이를 보며 ‘끝이 좋아야 다 좋다’는 격언이 떠올랐다.

인생은 많은 길고 짧은 달리기들로 구성되어 있고, 또 함께 더불어 사는 삶이기에 합창과도 비슷할지 모른다. 시작은 보통 좋다. 중간까지도 화려할지 모른다. 중요한 건 마지막이다. 짧게는 나의 지금 연구 프로젝트, 길게는 엄마와 아내와 딸로서, 또 내가 속한 갖가지 크고 작은 공동체의 더불어 사는 구성원으로서, 이 모든 레이스에서 뒷심을 가지고 끝까지 잘 달려서, 인생이라는 가장 긴 마라톤을 마무리할 때는 좋은 인생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중학교 2학년 어리고 순수하던 날, 끝까지 집중을 놓지 않고 한마음 한소리로 노래를 마치고자 했던 그 열정을 다시금 되살려본다.

<장희은 / 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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