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세 물길 하나 되기 전 최후의 용틀임… 여기가 바로 용궁

2021-10-22 (금) 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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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 용궁면 회룡포와 삼강주막

마음속 용궁은 당연히 바다에 있다. 표준국어대사전도 용궁을‘전설에서 바닷속에 있다고 하는 용왕의 궁전’으로 정의한다. 고전소설 ‘토끼전’과 이를 바탕으로 한 판소리‘수궁가’의 영향이 컸을 듯하다. 인당수에 몸을 던진 심청을 연꽃에 실어 물위에 올려 보낸 것도 바다의 용왕님이다. 전국에‘용(龍)’ 자가 들어간 유적과 명승이 셀 수 없이 많지만, 용왕님의 거처를 정식 지명으로 사용하는 곳은 예천 용궁면이 유일하다. 바다와 거리가 먼 경북 내륙의 작은 고을은 어떻게 용궁이 됐을까. 똑 부러지는 명쾌한 답을 찾긴 어렵다. 곳곳에 흩어진 용의 편린들을 찾아간다.

■아무도 모른다… 그래도 용궁이다


상하행선 열차가 각 6회 정차하는 경북선(김천~영주) 용궁역은 역무원이 없는 무인역이다. 그럼에도 역사 내부가 스산하지만은 않다. 1960년대에 지은 아담한 건물 대합실로 들어서면 오른쪽은 ‘토끼간빵’ 판매장, 왼쪽은 ‘자라’ 카페로 운영된다. 육지에 간을 빼놓고 왔다고 속여 위기를 모면한 토끼, 이를 곧이곧대로 믿은 자라가 역의 주인공이다. 토끼간빵은 예천에서 나는 농산물로 5~6가지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별주부전 이야기는 용궁시장으로 이어진다. 시장 어귀 건물 외벽 역시 토끼와 거북 그림으로 장식돼 있다. 그러나 시장을 점령한 건 토끼도 거북도 아닌 순대다. 자그마한 면 소재지에 순대 전문 식당만 10여 개다.

인근 개포면에 공군비행장이 있다. 1970년대 후반 이 비행장 공사에 투입된 노동자들을 상대로 한 식당이 여럿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대폿집을 겸한 ‘대은집’이 가장 인기였다고 한다. 주 메뉴는 선짓국과 오징어불고기였다.

유명 맛집 주변에 유사한 식당이 들어서는 건 당시도 마찬가지였다. 대은집에 사람이 몰리자 하나 둘 순댓국 식당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대은집 할머니의 손맛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어 선지 대신 선택한 메뉴가 순대였다. 술안주로 내는 오징어불고기는 그대로 따랐다. 용궁면의 식당은 요즘도 대부분 순댓국과 함께 오징어불고기를 세트로 판매한다. 용궁면에서 나고 자란 이순주 문화관광해설사가 전해준 이야기다.

면 소재지 뒷산 언덕에 ‘만파루’라는 누각이 있다. 죽어서 해룡이 된 신라 문무왕과 천신이 된 김유신이 용을 시켜서 보낸 대나무로 만들었다는 피리 ‘만파식적’이 연상된다.

당연히 경주 감은사지와 인근 동해바다를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만파’라는 이름만 같고 딱히 연관은 없다고 하니 이 또한 용궁의 단서는 되지 못한다. 적병을 물리치고 나라의 근심 걱정을 덜어준다는 만파식적의 전설과 달리, 만파루는 한량들의 놀이터였다.

축산, 원산, 용주 등으로 불리다 용궁이라는 지명이 처음 등장한 건 고려 말이라고 한다. 용궁현 관아는 현재의 위치에서 조금 떨어진 내성천변 향석리였다. 철종 7년(1856) 대홍수를 당해 만파루 역시 관아와 함께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유서 깊은 건물이라 자랑하지만 속절없이 묵어가는 시설은 또 있다. 관아가 있던 향석리에 용궁향교가 있다. 조선 왕조가 한 고을에 하나의 향교를 세우는 원칙을 정하기 이전인 태조 7년(1398)에 창건한 오래된 교육기관이다.

한적한 마을 뒤편 산허리를 따라 유생들의 휴식 공간인 누마루(세심루)와 강학 공간인 명륜당, 숙소인 동재와 서재, 제향 공간인 대성전 등이 가지런하게 자리하고 있다. 안내문에는 세심루에 오르면 넓게 펼쳐지는 시원한 눈 맛이 일품이라 자랑하는데, 정작 외삼문이 굳게 잠겨 있어 내부에 발을 들일 수 없다.

■내성천의 마지막 용틀임, 회룡포와 원산성

용궁면 남쪽, 내성천이 낙동강과 합류하기 직전 가파른 산자락을 크게 휘돌아가는 곳에 회룡포마을이 있다.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였고, 가는 산허리로 겨우 바깥과 연결된 지형이니 대한민국 최고의 물돌이 마을이라 해도 틀리지 않다. 찻길은 인근 개포면으로 한참 돌아가야 해서 실제 섬이나 다를 바 없다.

다행히 마을 북쪽에서 일명 ‘뿅뿅다리’로 불리는 보행자 전용 다리가 연결돼 있어서 여행자는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 고립무원의 한적한 강마을 정취를 즐기기엔 오히려 그만이다. 제방을 따라 공원처럼 말끔하게 산책로가 정비돼 있다. 천천히 마을길을 거닐면 세상의 모든 소음을 제거한 듯한 고요 속으로 빠져든다. 산으로 막혀 사방이 고즈넉한데, 넓은 모래사장을 흐르는 잔잔한 물소리와 이따금씩 들려오는 산새 소리가 귓전을 간질인다. 잠시 인간 세상을 벗어난 착각에 빠진다.

조생종 벼를 심는 논농사를 제외하면 회룡포마을 들판은 경관용 작물을 심는다. 현재 마을엔 6가구 8명만 거주하고 있다. 주민 수에 비해 넓은 토지는 이미 가을걷이를 끝냈다. 내년을 겨냥해 유채와 꽃양귀비, 백일홍 등을 심을 들판이 텅 빈 상태라 조금 아쉽다. 대신 마을 한가운데에 측백나무를 심어 미로공원을 조성해 놓았다. 황금빛과 녹색이 적절하게 섞인 공원 입구에 들어서면 토끼와 거북이 코스로 분리된다. 미로 끝 전망대까지 연결되는데, 사실 어느 길을 선택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어차피 빨리 가는 게 목적이 아니다. 길을 잘못 들면 막다른 골목에 숨어 있는 토끼나 거북 조형물과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다.

물이 크게 휘돌아가는 모습을 용틀임에 비유한 회룡포라는 지명은 사실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오랜 옛날 의성에 사는 경주 김씨 5명이 들어와 개간한 마을이어서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의성포’ 또는 ‘의성개’라 불렸다고 한다. 경치 좋은 곳으로 소문나면서 위치를 묻는 전화가 수시로 걸려와 의성군이 쓸데없는(?) 불편을 겪었고, 결국 예천군에서 회룡포라고 마을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마을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는 북측 비룡산 능선에 있다. 장안사라는 작은 사찰까지 차로 올라가서 약 300m를 걸으면 전망대에 닿는다. 마을을 휘감은 물줄기뿐만 아니라 그 바깥을 두르고 있는 들판과 낮은 산 능선까지 한 폭의 그림이다. 요즘처럼 일교차가 큰 가을에는 짙은 안개가 피어올라 꿈결 같은 풍광을 선사한다. 상상 속 용궁의 모습이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전망대 풍광 하나만으로도 부족함이 없지만, 산행의 맛을 즐기려는 이들은 잘 알려지지 않은 원산성까지 걷는다. 약 2.2㎞ 떨어져 있다. 전망대 부근이 이미 능선이라 그리 어렵지 않다. 전망대에서 돌아서면 바로 봉수대가 보인다. 원통형 굴뚝이 아니라 정방형이다. 1968년 김신조 일당의 청와대 습격 이후 군 훈련장과 헬기 착륙장을 건설하며 원형에 가깝게 남아 있던 5개의 봉수대가 사라졌다고 한다. 지금 봉수대는 2000년에 세웠다.

원산성까지는 오솔길처럼 조붓한 산책로로 연결된다. 두어 군데 오르막의 나무계단을 제외하면 별로 다듬지 않고 발길에 닳은 자연스러운 길이다. 원산성에 도착해도 분위기는 크게 다르지 않다.

<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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