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10일은 10자가 겹쳐서 쌍십절이라고 한다. 쌍십절은 중화인민공화국의 명절이 아닌 대만 건국기념일이다. 1911년 10월10일 쑨원(손원)을 주축으로 벌어진 ‘신해혁명’ 봉기를 기리기 위해 제정된 국경일이다. 한편으론 ‘우창봉기’를 기념하고 있다고도 한다. 우창봉기가 신해혁명의 발단이 되어 중국 각지에서 혁명 운동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이 공산주의 중국을 만들어 버린 배경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북한도 이 날은 국경일이다. 북한은 9월9일을 정권 창건절로, 10월10일을 당 창건절로 기념하고 있다. 이날 북한은 당연히 군사 퍼레이드 등 대규모 기념행사를 거행하면서 힘을 과시해왔다. 몇 년 전에는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을 연달아 실시하며 미국을 향한 위협을 본격화하는 시기로 활용했다. 그 것이 바로 괌 미사일 공격 위협이었다. 지난해는 노동당 창건 75주년에 맞춰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열병식)를 공개했다. 그 한 해 전에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북극성 3형’도 공개했다.
그러나 북한 노동당 창건 76주년을 맞는 올해 북한의 분위기는 코로나사태 때문인지 본격적인 기념일 맞이에 들어간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문재인 대통령의 행보가 더 눈길을 끌었다. 문 대통령은 북한이 미국의 거듭된 대화 제의에 응하지 않는 가운데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진전 방안으로 종전선언 카드를 꺼냈다.
이 방안을 지난달 76차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서 언급했는데, 막상 북한은 문재인 대통령이 제기한 종전선언에 대해 “종잇장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북한은 흔히 그렇듯이 또 금세 입장을 바꾸어 지난달 24일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 담화에서 “종전 선언은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그리고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은 “흥미 있는 제안이고 좋은 발상”이라고 호응했다.
사실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2018년과 2020년 유엔총회 연설을 비롯해 수시로 강조해 온 메시지이다. 남북이 현 시점에서 종전선언을 통해 ‘상호 존중’ 원칙에 합의한다는 것은 북한의 입장에서도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에 기초하고 있는 남한 때문에 쉽지 않을 것이다. 2018년 판문점에서 만난 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도 그해 종전을 선언하자고 합의한 바 있다. 하지만 미국과의 관계 정리는 현재 진행형인 미중 갈등 중에 더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보니 북한은 계속 몽니를 부리면서 관심을 끄는 돌출행동을 하는 것 같다. 문 대통령이 남·북·미·중 4자가 모여 함께 종전선언을 하자고 담화를 발표한지 사흘 만에 미사일을 발사하며 남북관계를 냉각시켜 버렸다.
북한은 그동안 각종 기념일을 전후해 도발을 감행해왔기 때문에 올해도 쌍십절을 전후해 추가 도발을 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싶다. 특히 심화되는 미중 갈등 속에 북한의 비핵화 의지는커녕 계속 이어지는 이판사판 상황에서 평화로운 단계로 가는 한반도가 현실화 될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다만 한국 국민 대다수의 공감대가 없는 종전선언은 오히려 안보 불안만 가중시킬 수 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역대 행정부 수장들과 같은 입장을 보이고 있다. 취임 직후 한국전쟁 종전선언에 앞서 한국과 일본을 포함한 역내 안보에 대한 충분한 평가가 선행돼야 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북한은 늘 쌍십절을 전후해 중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거나 열병식을 하며 무력시위를 하였다. 올해는 종래의 상황과 달리 어떤 모습을 보일까.
미주 지역에는 오매불방 이산가족 상봉을 기원하는 고령의 이북출신 교민들이 아직도 살아있다. 이들은 올해 쌍십절을 지켜보면서 북녘 땅의 이산가족을 생각하며 아픈 가슴을 달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들의 한은 언제 풀릴 수 있을지 안타깝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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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 뉴욕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