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39대. 기록이다. 그 기록은 이내 깨졌다. 이틀 뒤에는 56대가 날라들었다.
2021년 10월1일 중화인민공화국 72주 건국기념일. 춘절과 함께 중국의 양대 명절인 이날 전투기, 폭격기 등 38대의 중국 군용기들이 대만 방공식별구역(ADIZ)에 진입했다. 그 다음 날은 39대, 그러더니 나흘째 날에는 56대가 날아든 것이다.
건국기념일을 시발로 중국이 벌인 사상 최대 규모의 공중 무력시위.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국가도 운이라는 것이 있는 것인가. 마치 상승세의 운을 탄 것 같았다. 경제성장은 항상 예상을 웃돌았다. 야심적 해외전략인 ‘일대일로’는 순조롭게 진척되고 있었다. 트럼프의 출현과 함께 미국은 스스로 고립의 길을 택했다. 그 트럼프를 겨냥해 시진핑은 다보스포럼에서 보란 듯이 한 마디 했다. ‘다자주의를 실천하며 인류운명공동체 건설을 추진하자’고.
그게 2017년 초의 상황이다. 이후 갑자기 액운이라도 찾아들었는지 중국은 사면초가의 상황을 맞고 있다.
중국이라면 진저리를 치고 있다. 미국, 영국, 일본, 인도, 호주, 한국, 스웨덴 등 세계의 주요나라가 보이고 있는 공통된 현상이다.
쿼드가 부활되더니 앵글로색슨 동맹인 미국, 영국, 호주의 ‘오커스(AUKUS)’ 3각동맹이 발족됐다. 이 ‘핵잠 동맹’발족과 함께 미국에 날을 세웠던 프랑스의 국회의원단이 대만을 공식 방문했다. 유럽연합(EU), 나토가 반중전선에 합류한 데 이어.
어쩌다가 이런 상황을 맞게 됐나. 신장위구르 자치구에서의 인종청소. 홍콩사태, 중국 발 코로나 19 팬데믹, 완력 외교에 늑대전사…. 베이징 스스로가 매를 벌어들였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고립처지에 몰린다. 그러면 스스로를 돌아본다. 그리고 노선 전환을 시도한다. 정상적 국가라면. 베이징은 전혀 그런 낌새조차 보이지 않는다. 반중연대가 계속 확산되는 상황에서도 늑대전사를 자처하는 중국외교관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주재국정부를 자극하기 일쑤다.
중국 공산당 체제는 그 속성상 교정능력이 없는 것인가. 과거를 보면 그렇지도 않다. 톈안먼 사태 발생과 함께 전 세계가 중국에 등을 돌렸다. 그러자 베이징은 대대적인 노선수정과 함께 전향적 외교를 적극 펼쳐왔다. 그 대가는 전례 없는 경제발전이다.
그러면 왜…. 베이징의 정치적 기류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포린 어페어지의 진단이다. 과신, 더나가 오만(hubris)이 바로 문제의 핵심이라는 지적이다.
2008~9년 전 세계를 휩쓴 금융위기 때 베이징은 나름 선방을 했다. 이 때부터 자신감이 붙었다. 이와 동시에 외교도 달라졌다. 독단적 스타일로. 2012년 시진핑의 등극과 함께 자신감은 과신으로 바뀌면서 ‘중국은 천하의 중심’임을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그 때가 2017년이다.
그리고 그 다음해 봄 시진핑의 장기집권을 확정짓는 안이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확정됐다. 동시에 시진핑 개인숭배가 당의 공식 정책으로 채택됐다.
뒤이은 코비드 팬데믹 상황, 그리고 카불 함락 등 일련의 사태를 겪으면서 베이징의 미국 쇠망론에 대한 확신은 더욱 굳어지면서 ‘중국 천하론’은 시진핑 체제하에 일종의 ‘베이징 컨센서스’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이와 함께 등장한 것이 늑대전사로 불리는 새로운 유형의 외교관들이다. 늑대외교의 창시자는 시진핑으로 친필메모를 통해 외교관들에게 투쟁정신을 강조해왔다. 그 정황에서 벌어진 것은 터무니없는 충성경쟁이다.
시진핑의 지시를 따르지 않을 때 숙청을 당할 수 있다는 공포감에 중국 외교관들은 ‘말도 안 되는 강경발언’경쟁을 벌여온 것이다. 그 대가는 전례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의 대대적인 국제적 백래시(backlash)다. 그럼에도 불구 오늘도 늑대전사들의 궤변은 계속되고 있다.
오만뒤에 찾아오는 것은 응보라고 하던가. 무도한 경제보복, 거친 억압외교 등은 부메랑으로 되돌아오면서 ‘중국식 사회주의 시스템’은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고 있다.
‘희망이 없는 불평등은 극히 위험하다’- 지오 폴리티컬 퓨처스는 현 시진핑 체제 중국이 맞고 있는 구조적 문제를 이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서 시진핑의 종신집권의 관문인 2022년 전국인민대회를 앞둔 중국은 사회적 유대와해, 국가시스템 불신 등 내부적 모순이 극도에 이른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시진핑이 던진 것이 ‘공동부유론’이다. 쉽게 이야기하면 공산당이 나서서 부자들을 공격함으로써 10억이 넘는 ‘못 가진 자’들을 달래보자는 꾀를 낸 거다. 이 정황에서 벌어진 것이 나흘간 누계 149대의 중국 전투기, 폭격기들이 떼를 지어 대만 방공식별구역을 진입한 사건이다. 이를 결코 우연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 지오폴리티컬 퓨처스의 진단이다.
그러니까 베이징은 외부의 적을 희생양으로 삼아 내부의 불만을 외부로 돌리는 도박을 벌이고 있다는 거다. 과거 마오쩌둥은 계급투쟁을 통해 불만을 잠재우려 들었다. 문화대혁명이 바로 그것이다. 시진핑은 중화민족주의 고창과 함께 대만카드를 꺼내 든 것.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
“지도자에 대한 개인숭배와 공산당 통치가 결합될 때 예외 없이 대재난의 상황이 발생했다. 소련의 스탈린, 중국의 마오쩌둥,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 북한의 김씨 왕조 등에서 보듯이. 시진핑사상 교육을 통해 시진핑도 그 길을 답습하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의 지적이다.
다른 말이 아니다. 개인숭배강화를 통해 종신집권을 꾀하고 있는 시진핑은 14억 중국인민은 물론이고 세계를 전쟁의 참화로 몰아갈 수도 있다는 거다. 하여튼 불길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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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