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뜬다. 휘영청 추석 달이 뜬다. 그러나 코로나 역병 속에 황망히 맞는 두해 째 가을. 하늘은 텅 비고 가슴은 회색 빛 먹구름으로 숨막혔다. 그런데 오늘 이 밤에 바라보는 보름달이 유난히 밝고 차오름은 웬일일까?
달의 정기는 우리 속에 숨은 정열을 끊임없이 일깨우는 것 같다. 못 다한 일들을 도전하도록 부추긴다. 달의 여신, 이시타르의 유혹이거나, 달의 광기인지도 모른다.
서머세트 모옴의 단편 ‘달과 6펜스’는 광기 서린 인간상, 예술을 쫓는 한 영혼의 뜨거운 열정을 그렸다. 어느 날, 중견의 증권거래인이 집을 떠난다. 가정도, 직위도 버리고 화가의 꿈을 찾아 떠난다. 가난과 고독 속에 허우적대는 그를 사람들은 비웃는다. 그러나 그는 타히티 섬까지 흘러가 미친 듯이 그림에 몰두한다. 그러다 끝내 나병으로 죽고 만다. 그의 사후, 추렴된 작품들은 불과 6펜스에 지나지 않는다.
이 소설은 프랑스 화가 고갱을 모델로 한 것이다. 모옴은 이 작품에서 패배한 인간이 아니라 한 예술가의 불굴의 정열을 그렸다. ‘달과 6펜스’에서 달은 주인공의 광기 어린 열정을 뜻하며, 6펜스는 그가 과감하게 던져버린 세속적인 가치를 의미한다.
달이 광기(Lunacy)를 상징함은 달의 끊임없는 변화에서 비롯되었다. 초승에서 상현으로, 보름에서 다시 하현으로 기우는 달. 그래서 셰익스피어는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달은 불안정하고 믿을 수 없다고 경고한다. 그는 오텔로의 입을 통해 달이 지구에 가까워오면 사람들의 머리가 돈다고 저주하고 있다.
그러나 알고 보면 달은 광기와는 거리가 멀다. 동요도 변화도 하지 않는다. 달은 적막의 세계이다. 달에는 공기가 없어 소리도, 바람도, 풍화작용도 없다. 생명체의 흔적도, 삶의 소리도 없다. 유혹이나 열정이나 광기는 더더구나 없다. 이따금씩 떨어지는 작은 운석과 조그만 산사태, 그것만이 달에서 느낄 수 있는 움직임의 전부이다.
달의 실제 모습도 변하지 않는다. 달은 27.3일을 주기로 지구를 한바퀴 돌면서 자신도 한번 자전한다. 자전과 공전주기가 같으므로 달은 항상 우리에게 같은 면만을 보인다. 달의 모양이 초승에서 보름으로 달라 보이는 이유는 순전히 달이 도는 위치에 따라 사람의 보는 각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광기는 달의 것이 아니라 사람의 몫이다. 가장 요란한 인간들 광기의 예가 달 정복 경쟁이었다. 64년전, 구 소련의 스푸트니크가 오른 이후, 미소 두 강대국은 달 정복에 자존심을 걸고 매달렸다. 그 후 수천 개의 인공위성이 쏘아 올려졌다. 지금은 일론 머스크가 소형 인공위성 1만2,000기를 쏘아 올려 지구 전역에 초고속 위성 인터넷 서비스를 구축한다는 ‘스타링크’ 사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 탓에 우주에는 지구 대기권에서 연소되지 못한 물체들이 영원한 우주 쓰레기가 되어 떠돌고 있다. 현재 야구공보다 큰 물체만 수 만여 개, 모두 1억 개가 넘는 인공 쓰레기가 영겁의 우주를 더럽히고 있다.
달은 영원한 충만함이다. 그러나 6펜스는 인간의 광기 서린 욕심이 빚어낸 물질문명, 자연파괴와 우주 오염을 몰고 온 그 찰나적 문명의 세속적 가치를 상징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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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봉 수필가 Enviro 엔지니어링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