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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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아우성

2021-10-01 (금) 윤재현 은퇴 연방 정부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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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이 한 닢 두 닢 누렇게 뜬다. 현관에서 훌륭한 블라인드 역할을 하던 상록수다. 동네사람들이 이 집 나무는 기름으로 닦나 입에 오르내리던 파이커스. 이 나무도 나처럼 늙어 골골하는가. 누런 잎이 파란 잎보다 많다. 죽는 것이 분명하다.

나무를 없애야지. 우선 절단기로 나무 가지를 잘랐다. 큰 몸통과 삐죽삐죽 올라간 가지만 대여섯 개 남았다. 뿌리를 뽑으려고 삽으로 흙을 뒤집었다. 아차! 흙이 콩가루처럼 말라있다. 그동안 물을 부지런히 주었지만, 비료에 섞인 기름이 물을 차단한 것이다. 뿌리에 물이 가지 않았다. 물, 물, 물, 얼마나 목이 말랐을까. 조용한 아우성을 나는 듣지 못했다. 나무야 미안하다. 그것도 모르고 나는 너의 가지를 자르고 뿌리를 파헤쳤구나.

긴 쇠막대기로 흙을 헤치고 물을 흠뻑 주었다. 물 때문에 나무가 죽어 가는지 매일 아침 나가서 보았다. 기다리는 냄비는 끓지 않는다고 아무런 소식이 없다. 약 열흘이 지났다. 한국일보를 가져오려고 현관으로 나가다 보았다. 이게 웬일인가. 가지 사이에 아기자기한 잎눈이 나무를 뚫고 얼굴을 내밀었다. 와! 너 죽지 않고 살아있구나. 아침이면 그 잎눈을 구경하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 무럭무럭 자란다. 그 옆에 또 잎눈이 나온다. 여기저기 경쟁하듯 나온다. 세월이 지나면 나무는 원상으로 회복될 것이다.


나무도 사람도 물이 필요하다. 단식하는 사람도 물은 마신다. 사람에게 필요한 물을 우리는 정말 물 쓰듯 쓴다. 지난주 내가 사는 동네에 새벽에 세 시간 정도 정전이 되었다. 전기는 없어도 전지나 촛불을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물은 다르다. 상수도 꼭지에서 물이 나오지 않으면 큰일이다. 우선 변기를 사용할 수 없다, 1999년 Y2K 소동 때 장모가 살던 노인아파트에서 병물, 초, 프로판가스, 신문지를 장만하는 일이 벌어졌다. 신문지는 변기를 사용하지 못할 경우, 종이를 깔고 배변하기 위해서란다. 나는 장모에게 모두 헛소문이니 물품을 구하지 말라고 말렸으나 귀담아듣지 않았다.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가뭄이 계속되고 있다. 호수가 말라붙어 바닥이 그물코처럼 갈라졌다. 비가 제대로 내린 지 얼마인가. 1990년대 겨울에는 남가주에 비가 너무 많이 내려 홍수가 나서 내가 운전하던 차가 물에 떠내려 갈 뻔 했다. 비가 그렇게 한 번 왔으면 좋겠다. 남가주의 수자원인 콜로라도 강과 오로빌 호수의 수위가 위험한 수준으로 낮아졌다고 한다. 절수해야 한다. 단수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윤재현 은퇴 연방 정부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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