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코로나, 그리고 당근과 채찍

2021-09-14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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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들어가야 할 나이가 된 자녀를 둔 부모들이 제일 먼저 하는 일 중의 하나가 백신을 맞히는 일이다. 소아마비를 비롯해 디프테리아, 파상풍, 루벨라, B형 간염, 수두, 홍역, 수두 등 많기도 많다.

이를 맞으러 가는 아이들이나 부모 모두 좋아서 가는 사람은 없다. 바늘에 찔려 아플 게 뻔한 것을 아는 아이들은 물론이고 부모도 마찬가지다. 이 물질이, 그것도 병원체가, 어린 아이 몸에 들어가는 것이 꺼림칙하지만 그래야 아이와 급우들이 원하지 않는 병에 걸리는 것을 막을 수 있고 무엇보다 접종 증명서가 없으면 학교에 보낼 수가 없기 때문에 가는 것이다.

그 결과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주요 국가 학부모들은 안심하고 자녀를 학교에 보내고 있고 (적어도 코로나 이전까지는) 가장 많이 인간을 죽인 질병의 하나인 천연두가 1979년 멸종된 것도 세계 보건 당국이 60년대부터 백신 보급에 박차를 가했기 때문이다.


백신 접종을 의무화한 것과 학교가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운 배움의 터가 된 것, 그리고 천연두 박멸이 광범위한 백신 접종 때문이라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정신 이상자를 제외하고는 없다. 그럼에도 21세기 미국에서 코로나 백신 접종 의무화에 반대하는 사람이 아직도 있다는 것은 기이한 일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주 백신 의무화의 칼을 빼들었다. 연방 공무원과 연방 정부와 계약을 맺으려는 회사 직원은 백신 접종을 의무화하고 100인 이상 직원을 둔 회사는 백신 접종을 의무화하거나 직원을 상대로 코로나 검사를 일주일마다 정기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이에 대해 공화당 주지사들은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다. 미시시피의 테이트 리브스 주지사는 바이든의 결정이 “무섭다”며 “여기는 아직 미국이고 우리는 폭군으로부터의 자유를 신봉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이 웃기는 것은 미시시피는 홍역과 유행성 이하선염(mumps)을 비롯한 7개 백신을 맞지 않으면 자녀를 학교에 보낼 수 없을뿐더러 다른 많은 주와는 달리 “종교, 철학, 양심적 사유”로 이를 면제하는 것조차 불허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시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는 앨라배마도 어떤 사유로든 자녀 백신 접종 면제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공화당 주지사들은 이번 바이든 명령이 불법이라며 법정 투쟁을 불사하겠다고 외치고 있으나 연방법은 직장 내 안전을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권한을 연방 정부에 주고 있다.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은 맞은 사람보다 코로나에 걸릴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고 자신뿐만 아니라 주위 동료나 가족에게 전염시킬 가능성도 크다. 이를 막기 위해 직장인의 백신 접종을 의무화하겠다는데 무엇이 문제인가.

물론 이상적으로는 각자가 자발적으로 백신을 맞는 것이 최선이다. 국가가 개인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것은 가능한한 피하는 게 좋기 때문이다. 미국 성인의 ¾은 스스로 알아서 최소 한 번 백신을 맞았지만 나머지 ¼은 끝끝내 백신 접종을 거부하고 타인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이런 다수의 미접종자를 그대로 방치할 경우 코로나 대유행을 종식시키는 것은 요원하고 델타보다 전파가 빠르고 치명적인 제3, 제4의 변이가 나타나지 말란 법도 없다. 그렇게 되면 천문학적 돈을 쏟아부어 겨우 살아나려 하던 미국 경기는 다시 침체로 빠지고 대량 실업과 중소기업 도산이 재발할 가능성도 있다. 바이든의 이번 조치로 8,000만명의 미국인이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중 상당수가 접종을 하게 된다면 이번 겨울이 코로나로 고통받는 마지막 시즌이 될 수도 있다.


미국인들의 백신에 대한 거부감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1721년 보스턴에서는 천연두 백신 접종에 반대하는 한 시민이 이를 주창하던 카튼 매더 집에 폭탄을 던졌다. 1905년에도 천연두 백신 접종에 반대하는 시민이 제기한 소송이 연방 대법원까지 올라갔지만 법원은 이를 의무화한 매서추세츠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입학 조건으로 아동 백신 접종을 의무화한 규정도 끝없는 반발 속에 지금은 모든 주가 받아들이고 있다. 아이다호는 2005년에서야 수두 접종 의무화가 시행됐다.

지난 300년 간의 미국 역사를 보면 백신 접종 의무화는 초기에는 거센 반발을 불러 일으켰지만 결국은 대다수가 이를 수용했다. 의무화에 따른 자유의 손실보다 그로 인해 얻어지는 공동체의 이익이 훨씬 크다는 사실이 분명히 입증됐기 때문이다.

말을 원하는 길로 가게 만드는 고전적인 방법은 당근과 채찍이지만 보다 효과적인 것은 채찍이다. 당근을 먹지 않음으로써 겪어야 할 고통은 어느 정도 참을 수 있지만 채찍의 아픔은 잠시도 견디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제 보다 큰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당근의 시간은 지났다고 보는 것이 옳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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