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호전적 이슬람집단의 참 모습을 보고 싶다면 지난주 탈레반 대변인이 내놓은 성명에 주목하라. 그에 따르면 “중국은 우리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로 근본적이고 비상한 기회를 대변한다.”
여기서 떠올려야할 점은 중국이 집단투옥, 조직적인 ‘재교육’과 숨막히는 철통 감시 및 강제거세에 이르기까지 자국의 무슬림들을 인정사정없이 핍박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투철한 이념을 지닌 이슬람 정부가 무슬림 문화 말살작업을 벌인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중국을 가장 가까운 우방으로 꼽은 셈이다. 여기서 얻은 교훈 하나: 호전적인 이슬람 운동은 종교 지향적이 아니라 권력 지향적이다.
9/11이후 2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우리는 급진 이슬람을 잘 모른다. 그들은 실존하는 사악한 집단이지만 지난 20년 사이에 이념논쟁을 접었다. 진정한 문명충돌은 서구와 이슬람 사이의 충돌이 아니다. 그것은 이슬람권의 기존 권력집단과 그들의 반대세력, 좀 더 범위를 확대하면 온건한 종교집단과 급진적 종교집단 사이의 충돌이다.
1996년에 나온 오사마 빈 라덴의 파트와를 떠올려보라. 일종의 종교적 명령인 파트와에서 빈 라덴은 ‘멀리 있는 적’, 즉 미국을 공격하는 이유를 그의 전략적 초점인 이집트, 사우디 아리비아 등 ‘가까이 있는 적’을 미국이 지원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목적은 중동의 독재자들을 쓸어내고 이슬람 운동을 무슬림권 전체를 지배하는 옛 칼리프의 권좌에 올려놓는 것이다.
그러나 빈 라덴의 전략은 판타지에 바탕을 두고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수억의 무슬림들이 샤리아 지배를 애타게 그리고 있고, 사담 후세인과 하페즈 알-아사드와 같은 독재자들을 향한 그들의 거부감이 독재정권에 항거하는 물라에 대한 지지로 이어질 것이라는 환상이다. 아랍세계의 많은 국가를 인기 없는 독재자들이 통치하고 있긴 하지만 해당국 주민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개방과 민주주의 및 현대적 삶의 수용이지 정권 퇴출이 아니다.
우리는 아랍의 봄으로 알려진 2011년의 대규모 시위를 통해 이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당시 이라크, 튀니지, 터키, 파키스탄,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등 무슬림 세계 곳곳에서 선거가 치러졌다. 하지만 선거에서 승리한 이슬람 정당들조차 민주적인 기본틀 안에서 행동했고, 합리적이고 온건한 노선을 추구했으며 엄격한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를 옹호하지 않았다.
공개적인 여론조사는 이런 추세를 이미 오래전에 포착했다. 2009년, 런던정치경제대학의 정치학교수인 파와즈 게르게스는 이슬람 수십 개 국에서 실시된 여론조사를 통해 호전적 이슬람운동과 테러리즘에 대한 지지가 붕괴됐음을 발견했다. 요르단인들 가운데 자살테러는 “종종 혹은 가끔 정당하다”고 답한 비율은 2005년의 57%에서 29%로 떨어졌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테러공격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는 반응이 2004년의 41%에서 74%로 껑충 뛰었다. 심지어 파키스탄에서도 전체 응답자의 거의 90%가 테러리즘에 반대했다. 2002년에 실시한 조사에서 같은 대답을 한 응답자들의 비중은 43%였다. (게르게스는 이 같은 수치가 의미하는 바를 확실히 보여주기 위해 미국인들의 반응도 함께 소개했다. 2002년 조사에서 “고의적으로 민간인을 겨냥한 폭격이나 기타 공격행위는 종종, 혹은 가끔 정당화될 수 있다”고 믿는 미국인은 전체의 24%에 달했다. 반면 46%만이 이런 종류의 공격은 절대 정당화될 수 없다는 의견을 보였다.) 뒤이어 나온 일련의 퓨 리서치센터여론조사 결과는 호전적 이슬람주의에 대한 폭넓은 반감을 재차 확인해주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걸프국가 등 일부 비민주적 무슬림국가들의 달라진 역할을 생각해보라. 9/11 이전의 수십 년 동안,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슬람 근본주의의 이념적, 정치적, 경제적 심장이었다. 사우디는 무슬림세계 전역에 율법학자인 물라와 자금, 모스크와 이슬람학교인 마드라사스를 수출했다. 불관용과 종교적 순결성으로 가득찬 이슬람 브랜드를 퍼뜨린 셈이다.
바로 그때 9/11이 터졌고 사우디아라비아 본토에서도 2003년과 2004년 연이어 테러가 발생했다. 그러자 중동의 왕조극가들은 곧바로 노선을 바꾸었다. 데이비드 페트레이어스는 이를 “테러와의 전쟁에서 가장 중요하지만 언론의 주목을 거의 받지 못한 긍정적 상황발전 중 하나”로 평가했다. 이런 상황발전은 계속 이어졌다. 반대세력을 거칠게 탄압하긴 했지만 사우디의 실세인 왕세자 역시 외국의 문화와 교육에 문호를 개방했고, 공포의 대상이었던 종교 경찰의 권한을 약화시켰으며 여성의 권리를 대폭 확대했다.
2001년, 아랍에미리트(UAE)는 사우디아라비아, 파키스탄과 함께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부를 인정한 3개국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외교관계를 수립한 UAE는 20년만에 권좌에 복귀한 탈레반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UAE와 이스라엘은 무슬림세계의 반발을 거의 받지 않은 채 이전보다 강력한 경제·사회적 관계를 쌓아가고 있다. 아부다비, 두바이와 도하 등 일부 걸프국 도시들은 중동 전역은 물론 아시아의 다른 많은 도시들에 비해 훨씬 개방적이고 다양하며 현대적이다. 물론 이들 모두가 절대왕정국가이지만 근본주의자들에게 더 이상 영합하지 않고, 공공연히 서구적이고 현대적인 가치를 포용한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말해준다.
탈레반이 중국을 가장 중요한 파트너로 꼽은 것은 그리 놀랍지 않다. 필자가 단언하건대 앞으로 탈레반은 무슬림세계에서 편안한 우방을 찾는데 더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예일대를 나와 하버드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파리드 자카리아 박사는 국제정치외교 전문가로 워싱턴포스트의 유명 칼럼니스트이자 CNN의 정치외교 분석 진행자다. 국제정세와 외교 부문에서 가장 주목받는 분석가이자 석학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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