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인가. 새삼 달력을 들여다본다. 아니 여전히 8월이다. 올 8월은 유난히 길게 느껴진다. 무더위 탓인가. 글쎄…. 코비드 팬데믹 가운데 치러진 최초의 올림픽, 이상기후에, 대지진. 이정표적인 국제적 이벤트에, 사건사고의 연속이었다. 그래서인지도 모른다.
2021년 8월15일에 일어난 일도 그렇다. 카불이 함락됐다. 탈레반이 돌아왔다. 뒤따른 것은 인간 사냥에, 무차별 살육에, 테러다. 지옥의 문이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같은 날 대한민국 서울. 광복절 76주년 행사가 열렸다. 자화자찬으로 가득 찬 대통령의 경축사가 끝나자 광기로 가득 찬 저주에 가까운 독설이 퍼부어져 나왔다.
친일 반민족세력들이 대대로 보수로 위장해 나라를 몇 십 년 끌고 왔다는 거다. 광복회장이라는 사람이 한 말이다. 작년 광복절에는 이승만 대통령, 안익태 선생을 친일매국노로 몰더니 올해에는 역대 보수 정권에다가 백선엽 장군까지 모두 싸잡아 친일파로 매도하고 나선 것이다. 그로 끝난 것이 아니다. 계속 방송에 출연해 친일몰이에 여념이 없다.
서울과 카불. 아시아대륙의 양 끝에서 동시에 벌어진 피의 광란과 저주의 굿판. 그 외형적 행태는 전혀 달라 보인다. 그러나 이 두 해프닝의 배경에서 뭔가 한 가지 공통점이 느껴진다. 부족주의(tribalism)의 어두운 그림자다.
아홉 살 난 여자 아이가 납치돼 성폭행을 당하고 살해됐다. 그 잔혹한 범죄자들의 범행이 밝혀지고 신원도 드러났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들에게 죄가 없다고 그것도 떼거리를 지어 주장하고 나섰다. 왜. 여자 아이는 다른 종교집단의 일원이니까. 인도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다른 부족 사람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 같은 끔찍한 행위도 합리화 된다. 부족주의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의식구조로 탈레반의 행태가 바로 그렇다.
그 부족주의는 다른 형태로도 나타난다. 적(敵)과 아(我)를 철저히 구분하고 적에 대한 온갖 비난에 언어적 테러는 물론이고 때로는 물리적 테러도 서슴지 않는다. 무슨, 무슨 주의(ism)란 이름하에 저질러지는 정치행위가 사실은 부족주의인 경우가 허다하다.
이 부족주의의 연장선상에서 현대 민주주의에서 독버섯 같이 자라나는 것이 파시즘이다. 그러니까 말이 ism이지 사실에 있어 오직 폭력(언어적 폭력이든, 물리적 폭력이든)만이 강령인 것이 파시즘인 것이다.
걸핏하면 친일분자로 몬다. ‘토착왜구’라는 등 이념의 포로가 된 언어로 테러를 가하면서. ‘보수의 악마화’를 끊이지 않고 추구해왔다고 할까. 그게 지난 4년여 동안 일관되게 보여 온 문재인 정권의 행태다.
“그런 문재인 정권의 전반적 행태를 이해 할 수 있는 키워드는 부족주의다.” 진보주의 학자인 강만준 교수가 일찍이 한 말이다. 그 부족주의를 공고히 하는 요소로 이른바 강성지지층인 ‘문빠’를 지목하면서.
다른 말이 아니다. ‘문빠의, 문빠에 의한. 문빠를 위한 정권이 문재인 정권’이고 그 강성지지층인 문빠에 볼모로 잡힌 것이 청와대이고, 여권이고 한국의 정치라는 이야기다.
광복 76주년이다. 그러니까 생물학적 나이로 보아 친일파는 대한민국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암울하고, 음산했던 과거의 기억을 억지로 소환해 내 반대진영에 대한 무차별 공격을 가한다.
이처럼 밑도 끝도 없이 ‘보수=친일적폐세력’으로 몰아가는 광복회장의 발언. 그 배경을 이루는 것도 바로 문 정권 행태 특유의 부족주의가 아닐까.
그의 잇단 친일몰이 발언은 동시에 뭔가 하나의 신호탄으로도 보여 진다. 패거리를 모으고 행동개시를 알리는 늑대의 규성(叫聲)과 같은.
대선까지는 6개월여 밖에 안 남았다. 해는 곧 지는데 갈 길은 멀다. 일모도원(日暮途遠)의 심정이다. 그러니 더 이상 지체 말고 행동에 나서라는. 뭐랄까. ‘문빠 파시즘 전면화’의 선언으로도 들린다.
그래서인가. 바로 전개된 것이 광기수준으로 치닫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의 입법폭주다. 누가 반대를 하든, 어떤 반대든 돌아볼 것 없다. 탈레반식의 막가파 입법을 밀어붙이는 거다.
한국의 전 언론이, 심지어 친문 좌파 언론도, 또. 변협에, 역시 좌파 단체인 민변도 반대다. 세계 신문협회를 비롯한 관련 국제단체들도 일제히 우려를 표명하고 니섰다.
그런데도 막무가내다. 언론중재법인지, ‘언론재갈법’인지, 친문 강경파들이 주도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사망으로 몰고 가는 그 법안을, 그것도 새벽 4시에 국회 법사위에서 단독으로 통과시키고 기뻐 날뛰는 여당의원들. 그 모습은 카불입성과 함께 총기를 공중에 난사하며 환호작약하는 탈레반을 빼닮았다.
‘민주주의규범을 무너뜨린다. 정치경쟁자는 아예 무시한다, 언론을 탄압한다. 그리고 폭력…’- 파시즘으로 가는 4단계 길을 문 정권은 아주 확실히 밟고 있다고 할까. 그 가운데 대한민국 정치는 베네수엘라 행 버스를 타고 있다. 대중의 환심을 사서 권력을 잡으려 혈안이 돼 있는 것이 문빠 공화국의 대권주자들로 보여 하는 말이다.
왜 이들은 서둘러 민주주의를 마구 파괴하고 있나. 답은 간단한 것 같다. ‘선거에 지면 죽는다’- 피해망상성 절박감의 발로에서가 아닐까. 그러니까 부족전쟁에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치는 케이브 맨(cave man)들처럼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죽기 살기로 막 가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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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