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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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군의 기억

2021-08-25 (수) 여주영 뉴욕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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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미 연초부터 9.11 테러 20주년에 맞춰 오는 9월11일까지 미군을 아프가니스탄에서 완전 철수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맞춰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탈레반에 정권을 이양하겠다고 밝혔다. 아프가니스탄이 20년 만에 다시 극단 이슬람 근본주의 탈레반의 나라가 된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에서는 그동안 끊임없는 반미 시위가 이어졌었다. 시위자들은 ‘미국에 죽음을’이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돌과 화염병을 던지고 타이어를 불태우며 결사 항전했다. 9.11의 원흉이라 불리는 오사마 빈 라덴은 죽었지만 그의 이미지는 아직도 살아남아 오히려 이슬람 세계에서 영웅으로 부상했다.

몇 년 전 아프간 통역관 지아 가푸리가 임신한 아내와 어린 자녀 셋을 데리고 미국에 도착했다고 한다. 미군 통역사로 일한 적이 있으면 배신자로 처형당하기 때문에 미국에 보내졌다는 것이다.


미군이 떠난 아프가니스탄은 이제 숙청과 처형의 나라로 변할 것이다. 당장 수도 카불은 해외로 떠나려는 주민들로 아비규환이고,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까지 헬기에 돈을 가득 싣고 필사적으로 도주한 상황이다.

미국은 1960년대 베트남이 공산화되는 것을 우려해 베트남에 많은 수의 젊은이들을 보냈다. 하지만 결국 반전운동으로 미군은 철수했고, 남베트남은 공산화되고 말았다. 사람들은 미군이 철수하더라도 남베트남의 경제력과 군사력으로 봤을 때 모두 끄떡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베트남은 결국 공산화되었고, 공산정부는 반혁명분자들을 대거 숙청했다. 미군이 철수하자 친미 성형의 아프간 정부가 무너지고 극단주의 탈레반이 다시 공포정치를 시작한 것과 동일했다.

유일하게 이런 악몽에서 벗어나있는 나라가 한국이다. 한국은 극단주의와 공산주의와의 대결에서 승리해 지금 마음껏 자유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지금 한국에는 간첩이 넘쳐나고 있다는 설이 있다. 이런 나라에서 만약 미군이 철수하면 어떻게 될까.

아프간의 비극이 남의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다. 남베트남이나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한 미국을 비난만 할 수 있을까. 만에 하나 미군이 철수하면 이미 많이 어지러워진 대한민국이 진정 광복하여 자주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탈레반도 그랬고 베트남 공산주의자들도 열세한 전력으로 미군을 몰아내고 해방에 성공했다. 북한이라고 못할 것은 없을 것이다. 어쩌면 그렇게 자기들 살고 싶은 대로 살게 하는 게 정답일지도 모르겠다. 저희끼리 지지고 볶고 죽이고 살리던…. 하지만 이것만은 기억하자.

일본으로부터 해방 후 한반도에 주둔해있던 7만 여명의 미군이 6.25 직전에는 500명만 남아 사실상 철수한 것이나 다름없었다고 한다. 1948년 9월15일부터 이듬해 6월30일부로 철수를 완료했으니 마음만 먹으면 완전 철수도 가능한 일이다.


얼마 전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담화를 통해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와 관련, 한국의 통일부는 “북한의 기존 입장을 거듭 밝힌 것”으로만 얼버무리고 끝냈다. 바이든 대통령은 주한미군 감축 또는 철수 가능성을 제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초당적 법안을 지지한다고는 한다. 그렇다고 미국 말만 믿고 두 다리 뻗고 자는 사람이 있을까.

바이든 대통령은 전 세계 미군 배치를 재검토하고 독일에 있는 미군의 철수도 중단하겠다고 까지 했던 사람이다. 중국의 영향력이 한반도에 극대화된 지금, 아시아 대륙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주한미군을 철수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하지만 점점 많은 한국인들이 반미와 철군을 원하는 시기가 온다면 현실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중국과의 전쟁으로 미국이 한국을 포기 못할 것으로 생각하는 한국인들이 아직도 주변에 많다.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이는 헛된 망상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여주영 뉴욕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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