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카불함락, 그 이후는…

2021-08-23 (월)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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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피스 차림의 여성이 길거리에서 처형됐다. 몸을 가리는 부르카를 입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것도 가족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부르카 차림인데도 한 여성은 머리가 피투성이가 된 채로 바닥에 쓰러져 있다. 옆에는 한 소년이 옷에 피가 묻은 채 울고 있다.

탈레반이 돌아왔다. 2021년의 카불은 생지옥이 됐다. 채찍, 칼, 곤봉 등을 휘두르며 여성과 어린이들에게 마구 폭행을 가하는 것은 예사다. 군중을 향해 총기를 난사한다. 심지어 픽업트럭을 몰고 질주하며 총질을 해댄다.

“탈레반은 탈레반이다. 그들은 변하지 않았다.”


그날은 공교롭게도 한국인에게는 광복절이었다. 그러니까 2021년 8월15일. 미군철수에 발맞추듯이 탈레반은 20년 만에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 무혈 입성했다. 그리고 한 주가 지난 현재 유혈의 아수라장이 된 현장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이 인도주의적 대참사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나. 1975년 사이공 함락 후 베트남의 말로보다 더 참혹한 아프간 정부 붕괴 이후의 상황. 이와 관련해 던져지는 질문이다.

비난은 미국, 바이든 행정부에게 주로 쏟아지고 있다. 지난 4월 초 바이든 대통령의 철군 발표 때 어느 정도 예견됐던 사태다. 그렇지만 아프간 정부는 말 그대로 광속으로 무너졌다. 이런 상황을 바이든 행정부는 전혀 예기치 못했던 것.

이에 따라 비난과 질타가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질서 있는 출구 전략을 만들지 못했다는.

‘팍스 아메리카나는 카불에서 종막을 고했다’-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진단이다.

비슷한 주장은 사이공 함락 이후 격동의 시기에도 나왔다. 인종갈등에, 도시폭동, 폭력범죄 급증 등으로 사회적 긴장은 높아갔다. 미국의 리더십도 흔들리면서 냉전전략 자체에도 의구심이 쌓여갔다. 이 와중에 미국인들의 의식을 파고든 것은 미국의 쇠망은 불가피하다는 일종의 페시미즘이었다. 많은 미국인들은 냉전은 소련 승리로 기울고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베트남전쟁 패배의 트라우마에 허덕이는 미국, 소련은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제는 소련의 때가 왔다는 확신과 함께 크렘린은 더욱 더 공격적인 해외정책을 펼쳤다. 그 정점은 1979년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이다.


카불함락 이후. 앞으로 상황은 어떻게 전개될까.

‘미국의 리더십은 심대한 타격을 입었다. 그 상황을 즐기면서 러시아의 푸틴이, 중국의 시진핑이, 그리고 그들의 친구들은 미국의 의지력을 시험하려 들 것이다.’ 싱크 탱크 애틀랜틱 카운슬의 진단이다. 아프간의 긴장사태는 바로 지구촌의 다른 지역으로 전이될 수도 있다는 거다.

폴란드, 발트해 3국, 우크라이나 등지에서 어느 때보다 불안감이 높아가고 있는 것도 바로 이 이유에서다.

‘그렇지만 그 가능성 0 순위 후보지는 대만이 아닐까.’ 많은 관측통들의 하나같은 지적이다.

‘미국은 쇠망의 길로 접어들었다’- 2008년 리먼브라더스가 도산했다, 이와 함께 중국공산당 지도부가 내린 결론이다. 이후 양극화 현상으로 미국의 정치상황은 혼미를 거듭해왔다. 베이징의 확신은 더 굳어졌다.

2020년 코비드 팬데믹의 엄습과 함께 미국 사회는 마비되다 시피 했다. 수십만의 사망자 발생은 물론 심지어 백악관도 뚫렸다. 그러자 시진핑은 엄숙히 한 마디 하고 나섰다. ‘서방은 지고 동방은 부상하고 있다’-. 공산제국 중국시대의 도래를 선언한 것이다.

그리고 1년도 못 된 시점에 발생한 것이 카불 함락의 대참사다. 이 사태로 베이징은 미국, 더나가 서방세계의 몰락에 대한 확신은 더더욱 굳어졌다. “바로 여기에 미국과 중국의 충돌의 씨앗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 타임스의 지적이다. 그 확신이 위험하다는 거다.

ABC방송도 비슷한 분석을 하고 있다. “1991년 미국이 이라크에서 전광석화 같은 승리를 거두자 중공군 수뇌부는 경악했다. 그와 정반대 상황이 발생했다. 이와 함께 시진핑은 가능한 한 빨리 대만문제에 결정을 내리라는 압력을 받고 있을 것이다.”

미 의회 전문지 더 힐은 이 같은 정황들을 감안, 앞으로 수개월이 난기류가 지배하는 가장 위험한 시기가 될 것으로 내다보았다.

여기서 이야기를 앞서의 미국의 베트남전쟁 패망 이후의 상황으로 되돌려보자. 소련의 아프간침공 이후 사태는 어떻게 전개됐나. 대반전으로 이어진다. 사이공 함락 15년이 채 못 된 시점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그리고 몇 년 못 가 소련제국도 무너졌다.

무엇이 소련제국을 무너뜨렸나. 레이건 대통령이, 대처 전 영국총리가 거론된다. 그러나 그보다는 미국인들보다 더 미국을 신뢰한 동구권의 민주인사들이 냉전승리의 주역이라는 평가다. 그들의 자유에의, 민주주의에의 간절한 염원은 결국 공산독재체제 무너뜨렸다는 것이다.

아비규환의 상황은 계속되고 있다. 그 가운데 다른 소식도 들려오고 있다. 탈레반에 저항해 싸우고 있는 자유전사들의 이야기다. 무엇을 말하나. 아프가니스탄은 20년 전의 아프가니스탄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아프간 국민의 70%가 모바일 폰을 소유하고 있다. 아프간 국민들은 내부적으로는 물론 외부 세계와도 연결돼 있는 것이다. 수백만의 아프간 여성들은 고등교육을 받았다. 20년의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가져온 변화의 일부다.

자유의 가치를 알게 된 그들이 개, 돼지같이 탈레반의 폭력에 그저 순응만 할까.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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