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프간 정부 왜 이리 쉽게 무너졌나
미, 830억 달러 투입에도 무용지물… 정예화 실패
▶ 자만심·문맹률 등 복합 요인… 동기부족·부패 만연…문서상 30만 정부군, 실제는 6분의 1 불과 지적도
16일 아프간을 탈출하려는 주민들이 수도 카불의 하미드 카자이 국제공항의 담을 넘어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로이터]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장악은 속전속결이었다. 4월 조 바이든 대통령의 미군 철수 선언 이후 고작 4개월이 걸렸다. 이달 말 예정된 미군 철수 완료 시한도 기다리지 않았다.
탈레반의 전광석화도 무섭지만 아프간 내부에는 더 비참한 이유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정부에 대한 불신, 부풀려진 군대 숫자, 고질적인 부정부패를 감안하면 이미 진 전쟁이었다. 총체적인 무능에 미국의 환상까지 더해졌다.
30만 명의 아프간군은 수적으로 탈레반을 능가하지만, 미군의 철수와 맞물려 탈레반이 대대적 공세를 벌이며 진격해오자 도망치거나 항복하는 등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아프간 정권 붕괴가 예상보다 훨씬 빨리 일어났다고 말하고, 조 바이든 대통령조차 미군이 1년 또는 5년을 더 주둔해도 아무런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언급했을 정도다. 워싱턴포스트(WP)는 16일 미군 관계자들이 아프간 정부군이 경쟁력을 갖추거나 미국 의존도를 떨쳐낼 수 있을지에 근본적 의문을 품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우선 미국식 중앙집권 구조와 국방부의 복잡한 관료주의에 기반해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아프간 정부군과 경찰을 키워내려는 미국의 목표가 애초 자만이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군이 아프간군을 너무 빠른 속도로 밀어붙이고 있었고 이들은 따라오지 못했다는 평가가 있다. 훈련받는 아프간인들이 동기 부족과 부패한 지휘체계 등 해소하기 힘든 어려움을 겪었다는 진술도 있다.
어렵게 신병을 모집해도 놀랄 정도의 탈영과 이탈이 발생한 것도 난제였다. 아프간 부족 간 민족적 균형을 유지하는 일 역시 쉽지 않았다. 특히 높은 문맹률은 가장 큰 장애물 중 하나로 분류된다. 아프간 신병 중 불과 2∼5%만이 초등학교 3학년 수준의 읽기만 가능했다고 한다. 숫자 세는 법, 색깔까지 가르쳐야 했을 정도였다.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미국이 20년간 아프간 정부군의 무기와 장비 훈련에 약 830억 달러을 쏟아부었지만 탈레반은 (정부군의) 저항을 거의 받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 원인을 세 가지로 압축했다. “정부군 사이에서 ‘아슈라프 가니 정부를 위해 죽을 가치가 없다’는 믿음이 커졌다” “군경이 모두 정부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의식을 공유했다” “탄약은 물론 식량까지 부족해지면서 전의를 상실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전투력 대신 불신이 팽배했다는 얘기다.
영국 공영 BBC방송은 아프간 정부군을 ‘유령 군인’에 빗댔다. 군인 숫자가 실제보다 부풀려졌다는 것이다. NYT도 문서상 30만 명으로 기재된 아프간 정부군의 실제 숫자는 6분의 1인 5만 명 수준에 불과했다고 폭로했다. 탈레반 병력은 8만 명으로 추산된다. 조직원은 6만 명 수준이지만 동조 세력까지 더하면 최대 20만 명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사실상 병력 숫자에서 이미 진 셈이다. 게다가 미군 철수가 더해지면서 곳곳에서 도미노 패전으로 이어졌다.
부정부패는 상황을 악화시켰다. 장병들의 급여를 노린 간부들이 병력 수를 허위로 기재했고, 정작 수개월간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 군인들은 지속적으로 탈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