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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총영사 논란과 공관장의 자세

2021-08-16 (월) 한형석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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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재 LA 총영사와 부인에 대한 비위행위 및 갑질 의혹이 총영사관 내부 직원들에 의해 제기되면서 외교부의 감찰이 진행돼 파문이 일었다. 관련 주장을 상세히 담은 문서가 녹음 및 동영상 파일들과 함께 언론에 별도로 제보됐다. 익명 제보자는 이들 자료가 보안 이유로 빠진 일부 내용을 제외하고는 외교부에 전달된 자료와 사실상 같은 내용이라고 밝혔다. 여기엔 청탁금지법 위반, 직원에 업무 외 역할 강요, 갑질·폭언 등 공관장과 그 가족이 해서는 안 되는 행위 의혹이 다수 포함됐다.

이번 총영사관 내부 직원들의 제보는 단순히 한 사람이 아니라 다수의 전·현직 직원들이 작정을 하고 준비한 내용이었다. 언론에 전달된 자료는 무려 약 20페이지에 달하는 문서 파일, 12개의 통화 또는 대화 음성녹음 파일, 2개의 동영상 파일, 57개의 사진 파일로 이뤄져 있는데, 그 분량만 봐도 상당히 오랜기간 준비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제보자는 자신이 독단적으로 결정한 것이 아니라, 다수 직원들의 동의 하에 이를 제보하기로 결정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박 총영사 부부는 이들 의혹 제기에 대해 답변을 회피하지 않고 일일이 해명하면서 일단 외교부의 감찰 결과를 지켜봐달라는 입장이다. 제기된 의혹들이 앞뒤 맥락이 잘린 채 부풀려지거나 오해, 곡해 등에서 비롯된 게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감찰 결과 해당 의혹들이 일부라도 사실로 밝혀지거나 혐의가 입증된다면 그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외교부 및 공직 인사 기준 및 절차, 공관장들의 자질과 기강 등이 다시금 도마 위에 오를 것이다. 총영사가 조기 교체될 가능성도 있다.


특히 박 총영사는 외교관이 아닌 교육공무원 출신으로 대통령의 고교 동문이라는 배경이 주목을 받았던 특임 공관장이라 더욱 그렇다. 이번 논란은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여부를 떠나 최소한 LA 총영사관 내에서 심각한 소통의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결과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이번 의혹에 대해 외교부가 파장이나 외교부 체면을 생각해 감찰 및 처벌을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하면 안 될 것이다. 철저한 감찰은 외교부의 투명성을 제고하고, 외교부에 대한 국민 신뢰를 지키며, 공관 직원들의 인권 보호와 근무환경 개선 등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절차다.

시애틀 총영사까지 부적절한 발언과 처신으로 직무에서 배제된 채 조사를 받고 있다. 일선 재외공관에서 근무하는 외교관들, 특히 공관장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얼굴이다. 일거수일투족이 주목과 검증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고 또 되어야 한다. 이번 사태를 교훈삼아 공관장들은 직원들이나 한인사회에 군림하려 들거나 공사 구분을 못하는 구시대적 자세를 버리고, 오로지 국익과 현지 한인사회 권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본연의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한형석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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