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탄소감축은“의지의 문제”

2021-08-16 (월)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CNN‘GPS’ 호스트 예일대 졸, 하버드대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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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발생한 일련의 사건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미국 에너지 정책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준다. 지난 월요일 유엔이 발표한 새로운 보고서는 기후변화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어 여기에 대응할 시간적 여유가 사라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보고서가 나오기 무섭게 바이든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기후변화에 지체 없이 대응해야한다”는 반응을 내놓았다. 바로 이틀 후,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은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주요 산유국들을 향해 당초 합의한 목표치보다 석유생산량을 늘릴 것을 촉구했고, 바이든은 기다렸다는 듯 맞장구를 치고 나섰다. 그러자 파이낸셜타임스는 “바이든, OPEC에 가라사대, 제발 더 많이 뽑아 올리렴”이라는 조롱기 섞인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미국의 에너지 정책은 역사와 함께 시작된 인류의 구태의연한 사고를 반영한다. 이번 주 백악관은 미국 에너지 정책이 실패를 거듭하고 있는 핵심 이유를 삽화처럼 보여주었다. 백악관의 약속은 국민에게 전혀 부담을 주지 않고,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할 필요 없이 탄소배출이 없는 미래로 나아가겠다는 것이다.

실현가능한 약속인가? 우선 기본적인 사실부터 파악해보자. 1990년, 미국의 에너지 소모량 가운데 화석연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85%였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비중은? 80% 정도다. 미국 에너지정보청은 현재의 정책이 그대로 이어질 경우 2050년에 이르러 이 수치가 75%선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처럼 저조한 전망이 나오는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정유회사들의 영향력 때문이다. 화석연료는 놀라울 정도로 부존량이 풍부하고 용도 역시 다양하다. 게다가 화력이 좋고 이동이 용이하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건 필요한 곳에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차를 움직이고, 공장의 기계를 돌리고, 음식을 만들고, 난방을 할 때 화석연료를 사용한다. 어디 그뿐인가. 플라스틱에서 섬유와 아스피린에 이르기까지 원유에 기반을 둔 파생상품이 수두룩하다.

상황이 이러니 화석연료 사용 감축 노력을 포기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정반대로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하자는 얘기다. 이렇듯 다양한 용도를 지닌 화석연의 사용을 낮추는 유일하고 합리적인 방법은 가격을 높이는 것이다. 탄소세를 부과해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모든 동력원의 단가를 비싸게 만드는 반면 청정에너지원을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정부는 턱없는 기후 목표를 연이어 내놓고 있으나 한번도 지킨 적이 없다. 2015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25년까지 미국의 탄소배출량을 대폭 감축하겠다고 선언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오바마 대통령이 지나치게 소심한 목표치를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도널드 트럼프 덕분에 우리는 이제 그 목표조차 달성하기 힘들다. 바이든은 일단 오바마에 비해 훨씬 야심찬 탄소배출 감소목표를 제시했다.

미국 에너지 정책의 최대 문제점은 우파의 기후변화 부정이다. 그러나 좌파 진영의 사고에도 잠재적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바로 마법적 사고(magical thinking)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어려운 선택 없이 탄소배출량을 낮출 수 있다고 믿는다.

UC버클리가 지난해 공개한 보고서는 2035년까지 국내 전력공급량의 90%를 화석연료가 아닌 청정에너지에서 뽑아낼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같은 기간 석탄소모를 제로로 끌어내리고 천연가스 사용량을 70%까지 낮추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처럼 과하게 긍정적인 시나리오에는 치렁치렁한 선결과제가 따라붙는다. 우선 전력수요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공급망을 신속하고도 대대적으로 개선하고 송전선을 신설하며, 전력 저장을 극적으로 확대하는 한편 미국 50개주 전역의 전력시스템 운영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하지만 새로운 송전선 하나를 구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작업에 속한다. 최근 재생에너지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인구밀집지에 송전선을 신설하려던 시도는 인가를 받기 위한 10년간의 싸움 끝에 무위로 끝났다.

또 하나의 조건은 재생에너지산업에 대한 정부의 재정보조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다. 여기에 보태 수소연료에서 전력저장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테크놀로지 개발에 필요한 자금도 제공해야한다. 한마디로 향후 10년에서 20년 사이에 지극히 효율적인 화석연료 대체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신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전력 공급망을 앞당겨 개선할 방법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이와 함께 지금 당장 탄소배출량을 크게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가 즉시 실행해야 할 일은 아래와 같다.
첫째, 원자력발전소는 퇴출시킬 것이 아니라 추가로 건설해야한다. 핵 발전은 안정적인 전력공급원일 뿐 아니라 탄소를 전혀 배출하지 않는다. 둘째, 가장 더러운 연료로 꼽히는 석탄이 전력공급에 차지하는 비중을 현재의 20%에서 제로로 끌어내려야 한다. 가능하다면 풍력, 태양열 혹은 생물자원(biomass)으로 석탄을 대체해야한다. 그러나 가장 쉽고도 빠른 방법은 탄소배출량이 석탄의 절반에 불과한 천연가스를 사용하는 것이다. 또한 주로 중국의 지원 아래 이루어지는 석탄기반 화력발전소 건설을 중단하는 대신 미국의 천연가스에 의존하는 발전소를 짓도록 개발도상국들을 설득해야 한다.

셋째, 성년이 된 전기차로 기존의 내부연소 차량을 대체하고, 수 천 개의 전기충전소를 확충해 이 같은 전환을 지원해야 한다. 넷째, 미국 온실가스 배출량의 25%는 제조업분야에서 나온다. 하지만 제조업체들이 내뿜는 탄소를 제거하기는 힘들다. 따라서 현재 접근이 가능한 탄소포집(carbon-capture) 기술의 사용 확대를 의무화해야한다. 여기에는 우리가 아는 가장 오래된 탄소 포집자가 포함되어야 한다. 바로 나무다.

이런 모든 접근법에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얼마든지 해결이 가능하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필자가 열거한 조치들이 탄소배출을 확실하게 줄일 것이라는 점이다. 지금으로부터 10년 후, 혹은 새로운 개발과 연구가 이루어진 이후의 얘기가 아니다. 바로 내일부터 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당장 내일부터 탄소배출을 줄이기를 진심으로 원하는가?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CNN‘GPS’ 호스트 예일대 졸, 하버드대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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