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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닮은 부부

2021-08-10 (화) 김희봉 수필가 Enviro 엔지니어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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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편인가 하면 아내는 초저녁 잠꾸러기다. 저녁 밥상을 물리기가 무섭게 예방주사 맞은 카나리아처럼 꼬박꼬박 존다. 그러나 새벽 5시만 되면 물 찬 제비처럼 일어나 푸우푸우 세수를 하고, 창문을 활짝 열어젖힌다. 그리고 날아갈 듯이 아침을 맞는다.

나는 정반대로 부엉이처럼 주위가 캄캄해 져야 기운이 나기 시작한다. 와랑와랑 켜놓은 TV를 흘깃 거리며, 책갈피를 뒤적이며, 과일을 와삭와삭 씹으며, 밀린 청구서까지 쓰는 1인4역을 보통 자정까지 해낸다. 그러나 새벽엔 잠이 쏟아져서 아침을 깨우는 건넛집 장닭 목을 비트는 꿈을 자주 꾼다.

잠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아내는 잠을 얌전하게 잔다. 색시처럼 이불 호청 귀 하나 비뚤어지지 않게 반듯하게 잔다. 나는 잠을 갈 지(之)자로 방바닥을 헤매며 잔다. 분명히 저녁 땐 아랫목 보료에 누워 잤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면 맨 윗목 방문 앞에 코를 박고 누워있다.


아내는 국을 맛있게 끓여선 건더기부터 먹는다. 나는 반대로 철저한 국물 파여서 건더기는 밀어놓고 뜨거운 국물을 후룩후룩 불어 마신다. 나는 식사 때마다 국물 뿐 아니라 숭늉도 한 사발 씩 마시는데, 아내는 밥을 다 먹을 때까지 물 한 모금 마시지 않는다. 헛배 부르게 국물만 축내는 나를 아내는 끼니때마다 ‘없는 집 자식’보듯 측은하게 쳐다본다.

아내는 먹는 것이라면 아낄 줄 모른다. 많이 사서 손님들이 올 때마다 푸짐하게 나눠 먹으려는 주의다. 이북이 고향인 친정댁에 늘 함께 피난 나온 동향 손님들이 끊이지 않았고, 식사 때마다 음식을 철철 넘치게 준비하는 걸 보며 자란 탓이리라. 그런데 나 같은 월급쟁이에게 시집와서도 그 버릇을 못 고친다. 나는 크지 않은 살림을 쪼개어 규모 있게 사신 어머니의 솜씨를 보고 커온 때문인지 접시에 담아도 되는 걸 대야에 퍼 담는 ‘큰손’가진 여자가 가끔 무섭다.

미술을 전공한 아내는 아무리 소품이라도 사람이 직접 그린 것, 사람의 체취가 물감 냄새와 함께 물씬 묻어나는 그림을 좋아한다. 나는 오리지널 그림이 비싼데다가 추상화쯤 되면 도저히 이해도 안되는 터라 직매장에 가서 장식용으로 그린 큼지막하고 허우대 좋은 그림을 사서 걸자고 조른다. 그러면 아내는 나를 아기보다 ‘포대기’를 더 좋아하는 내용 없는 사람이라고 내 자존심에 못을 박는다.

사과나 배를 한 궤짝 사오면 아내는 가장 예쁘고 윤이 돌고 먹음직한 것부터 먹는다. 손님이 와도 제일 크고 싱싱한 것부터 대접한다. 그래서 아내는 매일 제일 좋은 것, 새 것을 먹는다. 나는 반대로 썩은 것부터 먹는다. 나는 제일 못생긴 것부터 먹어야 내일 더 좋은 것을 먹는다는 희망 속에 산다고 강변하다가 결국 반도 못 먹고 아껴 두던 과일들을 썩혀 버린다.

우리 부부는 겉보기에 이렇게 다른데 사람들은 우리를 닮았다고 한다. 나는 우리가 오누이처럼 닮아 보인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다. 그것은 우리 결혼이 애당초부터 천생연분이었다는 내 고집을 확인시켜주기 때문이다. 결혼 10년쯤까지 아내는 재벌 집에 시집간 친구들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괜히 울적해 하는 듯 했는데, 수년 전부터 조금씩 포기해 가는 눈치다.

언제부턴가 나도 그렇게 즐기던 새벽잠이 점점 줄어들고 아내처럼 영양가 있는 건더기 국이 좋아지고, 싱싱하고 탐스런 사과에 손이 먼저 간다. 그러나 잠버릇만을 어쩔 수 없어 밤새껏 방바닥을 헤매다 부스스 일어난 나를 위해 아내는 건더기 많은 따뜻한 국과 싱싱한 사과 채를 썰어 아침상을 차려주는데, 자기는 제일 시든 사과 한 쪽을 맛있게 먹고 섰다.

<김희봉 수필가 Enviro 엔지니어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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