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 사이의 갈등이 장난이 아니다.
새로운 행정부 출범이후에도 ‘트럼프 관세’는 굳건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워싱턴은 중국 첨단기술업체들의 확산을 제한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국내 동종업체에 자금을 지원하는 방법을 다각도로 모색 중이다.
물론 중국은 미국의 강력한 견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런 분위기로 보아 양국 사이의 교역이 곤두박질쳤을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최근 두 나라 사이의 교역량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우리는 지금 신기한 신세계에 살고 있다. 중국과 미국은 사사건건 대립하지만 둘 모두 글로벌 경제의 중요한 부분으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양국의 갈등수위가 올라가는 반면 쌍방 교역이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다.
미-중 관계만 유난스러운 게 아니다. 중국과 호주 역시 다툼이 잦아지면서 툭하면 서로 치고 받는 설전을 벌인다. 지난해 중국은 호주를 향해 14개 조항의 불만사항을 공개하며 “중국을 적으로 돌리지 말라”고 엄중히 경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중국의 호주산 상품 구매는 사상 최고치를 작성했다.
오늘날 우리가 목격 중인 강대국 사이의 경쟁에 냉전시대의 프레임을 덧씌울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냉전시대에 미국과 러시아 사이의 연간 상품 교역량은 고작해야 30억 달러 정도에 불과했다. 오늘날 미국과 중국이 단 며칠 만에 달성하는 교역액이다.
과거의 소련과 지금의 중국은 비교자체가 불가능하다. 냉전당시 자유세계의 경제 지도에서 소련의 흔적은 찾아보기조차 어려웠다. 소련 통제하의 경제권에 속한 공산국가들 역시 무역과 여행을 통한 지구상의 나머지 나라들과의 교류가 극히 제한적이었다. 게다가 소련 경제는 원유와 가스, 니켈, 구리 등 자원 의존형이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지금의 중국은 세계 경제에 깊숙이 통합되어있다. 현재 중국은 세계의 상품교역 주도국이다. 20년 전까지만 해도 전 세계 국가의 절대 다수가 미국과 교역을 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지난해 중국은 미국을 제치고 유럽연합(EU)의 최대 상품 교역국으로 자리매김했다.
중국은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 미국의 소비자들을 필요로 한다. 역으로, 제너럴 모터스에서 애플과 나이키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많은 대기업들 또한 방대한 중국시장을 필요로 한다.
실제로 미국인 소비자들이 모든 종류의 상품을 낮은 가격에 구입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이른바 ‘월마트 효과’는 생산의 상당부분을 중국에 의존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빠른 확장세를 보이는 미국의 녹색 경제(green economy)의 뒷면에도 중국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있다. 요즘 국내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태양광 패널은 거의 예외없이 중국산이다. 게다가 중국은 1조 달러 상당의 미국 국채를 움켜쥐고 있다.
한 마디로 중국은 미국의 경쟁자이자 소비자인 동시에 적대국이다. 미국은 이처럼 복잡한 관계를 정확히 투영하는 대 중국 전략을 필요로 한다. 중국과의 관계설정에서 바이든 행정부는 부분적으로 상당한 가시적 성과를 거두었다. 우방국들을 설득해 중국의 인권탄압에 맞서는 통일전선을 구축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대다수의 우방국들이 중국과 긴밀한 경제관계를 맺고 있는 상황이라 현실적인 어려움이 따르는 게 사실이다. (중국은 거의 모든 아시아 국가의 최대 교역 파트너이다.) 이들은 중국과는 강력한 교역관계를, 미국과는 단단한 지정학적 관계를 갖고 싶어 한다. 이들에게 양자택일을 강요할 경우 미국은 작은 것을 탐하다 큰 것을 잃는 손해를 보게 된다.
그보다 더 미묘한 문제가 있다. 중국은 강하지만 세계의 지배권을 넘겨받기에는 역부족이다. 중국의 앞길은 말 그대로 첩첩산중이다. 베이징의 악명 높은 ‘한 가구 한 자녀’ 정책의 후유증으로 중국은 빠르게 고령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후진국에서 중진국으로 올라선 국가가 선진경제국의 문턱을 넘지 못한 채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후퇴하는 이른바 ‘중진국 함정’에 빠지기 십상이다.
시진핑 주석이 관치경제를 강화하면서 민간기업들을 상대로 각종 규제를 가하고 있는 것 역시 성장을 위협하는 불안 요인이다. 여기에 보태 중국의 새로운 공격적 외교정책 또한 인도, 호주와 일본 등 주변 강국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지난주 필리핀은 이미 오래전에 폐기 계획을 밝힌 바 있는 미국과의 방위협약을 갱신했다.
과연 워싱턴은 이처럼 복잡하기 그지없는 도전을 품을 수 있을까?
지금 미국은 독일이나 일본과 달리 미국에 국가안보를 의존하지 않는 경제대국을 맞수로 상대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과는 다른 가치와 믿음을 갖고 있는 비민주주의체제의 국가이지만 1940년대 스탈린 치하의 러시아와 달리 다른 나라들을 점령하거나 지배한 적이 없다. (러시아의 점령정책은 냉전을 촉발했다.)
그리고 이런 모든 일들이 국제교역이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반등한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것은 신 냉전이 아니다. 그보다 훨씬 복잡한 ‘차가운 평화’(Cold Peac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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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드 자카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