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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사스 사이즈’ 해프닝

2021-07-29 (목) 윤여춘 전 시애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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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록 허드슨과 제임스 딘이 한창 때 출연한 대하영화 ‘자이언트’의 주제곡은 휘파람 연주(미치 밀러 합창단)가 신바람 난다. 응원가로 차용한 학교도 있었다. 뒤이어 나온 영화 ‘알라모’의 주제가(‘여름의 푸른 잎’)는 기타로 반주하는 브러더스 포의 4중창 화음이 기 막힌다. 둘 다 거장 디미트리 티옴킨 작곡인데, 알라모는 오스카 주제가상을 받았지만 자이언트는 후보지명에 그쳤다.

두 영화 모두 텍사스가 배경이다. 자이언트는 광대무변의 대목장 주인부부와, 그 목장 한 귀퉁이의 자기 땅뙈기에서 유전이 터져 재벌이 된 후로도 안주인을 애타게 연모하는 젊은 집사의 뒤엉킨 삶을 그렸다. 존 웨인이 주연, 감독, 제작을 도맡은 알라모는 1830년대 멕시코 통치에서 벗어나려는 초기 텍사스 이민자들이 알라모 선교회당에 배수진을 치고 13일간 항전하다가 전멸당하는 과정을 그렸다.

텍사스는 미국 본토에서 가장 큰 주다. 한국보다 6배 이상 넓은데 인구는 절반 남짓하다. 나는 텍사스에는 오래전에 회사 일로 휴스턴만 두 번 다녀왔다. LA 같은 밋밋한 대도시였다. 하지만 역시 오래전에 자동차로 대륙횡단 여행을 하면서 텍사스를 통과할 때는 높은 산이 없고 푸른 평원만 지루할 정도로 넓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래서 크다는 뜻을 강조할 때 ‘텍사스 사이즈’라고 표현하는 모양이다.


그 텍사스에 요즘 ‘텍사스 사이즈’의 논란이 일고 있다. 극우파인 주지사와 부지사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악법’들을 밀어붙이고 있다. 공화당이 장악한 주 상원은 인종차별과 관련한 미국역사를 교사들이 정확하고 상세하게 가르치는 게 불가능하도록 고안된 법안을 통과시켰다. 인종차별을 고발한 고전 ‘앵무새 죽이기’와 마틴 루터 킹 목사 자서전 등이 낀 학생들의 필독서 목록도 사라지게 된다.

이 법을 발의한 브라이언 휴스 주 상원의원은 “주 헌법엔 필독서 목록이라는 게 없다”고 주장했다. 그의 법안이 확정되면 텍사스 학생들은 인종문제 역사에선 노예해방 등 긍정적인 부분만 배울 뿐 백인우월주의자가 누구이고 그들이 원주민과 흑인과 아시아인들에게 인륜적으로 어떤 행패를 부렸는지 알 수 없게 된다. 민주당은 진실이 빠지고 왜곡된 역사는 역사가 아니라 선전물이라고 비아냥한다.

한국에도 그런 일이 있다. 고등학교용 검인정 역사교과서는 6·25 전범인 김일성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고,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해 백척간두의 한국을 구한 이승만을 독재자로 매도한다.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말았어야할 나라이고 북한정권이 정통성 있는 정부”라거나, 박근혜 탄핵을 정당화하고 현직인 문재인 대통령의 치적을 들먹여 “역사 교과서가 문정권 홍보물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들었다.

텍사스의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그렉 애보트 주지사와 상원 통솔권자인 댄 패트릭 부지사가 추진하는 선거법 개정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똘마니’인 이들은 작년 대선 부재자투표에 부정이 있었다고 트집 잡는 트럼프의 뜻을 받들어 텍사스의 부재자 투표를 제한하고 투표소의 정당 참관인 권한을 강화하며 24시간 투표와 드라이브-스루(차량통과) 투표를 금지하는 선거법 개정안을 밀고 있다.

트럼프 지지기반인 백인 중산층의 응원을 업은 이 개정안은 먹고 살기 바쁜 이민자 등 진보계열의 서민들에겐 불리하다. 한국 국회라면 야당의원들이 법안 통과를 막기 위해 회의장 문을 봉쇄하거나 의장의 사회봉을 빼돌렸겠지만 텍사스 의회 민주당 의원들은 아예 의회를 버리고 워싱턴 DC로 단체 도피행각을 벌였다. 한국 여당이라면 “웬떡이냐”며 단독 표결하겠지만 텍사스에선 그게 안 되는 모양이다.

애보트 주지사는 민주당 의원들이 돌아오면 공무집행 방해죄로 체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그들이 의회에 복귀해 투표에 참여할 때까지 의회 회기를 무한정 연장하겠다고 말했다. 텍사스 주 대법관 출신으로 내년 주지사 재선은 물론 2024년 공화당 대선후보까지 넘보는 애보트는 ‘문 빠’들 아닌 ‘트럼프 빠’들의 눈치를 안 볼 수 없다. 일각에선 애보트보다 더 강한 우파 후보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미국정치나 한국정치나 다를 게 없어 보인다. 한국이 민주정치 우등생인 미국을 닮아가는 건지, 미국이 정치 낙제생인 한국을 닮아가는 건지 헷갈린다. 60년전 영화 ‘알라모’의 주제가는 “씨 뿌리고 수확했던, 젊은 시절의 그 때가 참 좋았었네?”라고 노래한다. ‘자이언트’ 주제가도 “하늘에서 떨어지는 은화를 보라. 이곳이 그 때의 텍사스다”라고 노래한다. 아쉽게도 지금은 그때의 텍사스가 아닌 것 같다.

<윤여춘 전 시애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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