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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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국어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2021-07-23 (금) 조태자 / 메릴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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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초에 이민 와서 사는 동안 모국어인 한국어는 나의 정체성이었고 어머니였으며 고향이기도 하다. 이민초기 나의 향수병을 달래준 것은 한국 신문이었다. 한국 신문을 매일 읽으며 모국어에 대한 향수를 달래었고 모국어로 예배드리고 찬송 부르는 교회생활이 나의 향수병을 많이 완화시켜주었다.

그러나 이 땅에 뿌리를 내려가는 동안 모국어도 중요하지만 더 갈급한 것은 영어로 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는 현실이었고 영어는 내가 넘어야할 과제이며 숙제이기도 하였다. 유럽인들은 자기 모국어 외에 2-3개의 언어를 구사하고 멕시코와 중남미 국가 사람들은 스페인어를 말하며 페르시아어는 그 주변 국가들이 오늘날까지도 사용한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가끔 이 나라의 언어인 영어에 대해 이질감을 갖기도 하였는데 같은 사물을 보고 표현하는 방법과 언어가 우리와는 달랐으며 또한 숫자개념이 정확하고 잘 정리되어 있고 인간의 감성에 대한 그네들의 표현은 나를 몇 번이나 감동의 바다로 초대하였는지 모른다.


어느 날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이라는 시를 읽고 그 절절하게 사무치는 그리움과 고독을 노래한 사연에 잔잔한 마음의 파도가 일렁이었다. 아! 나의 모국어… 한글이 이렇게 아름다운 비애의 노래를 부를 수 있다니… 과연 이러한 서정시를 다른 나라 언어로 번역할 수 있을까하고 자문해보았다. 우리의 국민시인 김소월도 마찬가지이다. 소녀시절에 외웠던 ‘초혼’은 이 나이가 되어서도 그 구절들이 생각나면 가슴이 미어지도록 쓸쓸해진다.

나의 자녀들이 이 나라에서 태어나고 자라면서 나는 어머니로서 뿌리교육을 잘 시켰는지에 대해 회의감이 일어난다. 나의 자녀들은 한국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래전 남편과 함께 같은 병원에 근무하였던 유대인 닥터가 그의 아들 성인식 즉 ‘바 미스바’(Bar Mithvah)에 우리부부를 초대해주었다. 강단에 선 그의 아들은 모든 회중 앞에서 유창하고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히브리어로 토라를 읽어 내려갔고 그의 옆에는 랍비가 서 있었다. 나는 그때 유대인들의 성인식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자기 모국어로 읽고 쓰고 말하는 저 뿌리교육이 너무나 부러웠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저런 제도가 있다면 한국 엄마들이 자녀들에게 철저하게 한글교육을 시켰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고향이 있듯이 모국어가 있다. 그것은 자기의 정체성이며 소속을 알게 하는 무언의 무기이며 그것으로 인하여 수많은 희로애락을 함께 공유하는 공동체의 상징이기도 하다.

<조태자 / 메릴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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