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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헌터 바이든

2021-07-20 (화) 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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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화단에 스타 화가 한 사람이 혜성처럼 등장했다. 드로잉 한 장에 7만5,000달러, 회화 대작은 50만 달러를 호가하는 거장 급이다. 그런데 이 화가는 50 평생에 한 번도 미술교육을 받은 적이 없고, 전시회를 가진 적도 없다. 그냥 어느 날 홀연히 자신을 ‘아티스트’로 규정한 뒤 유명화랑을 등에 업고 작품을 팔겠다고 나섰으니 세기의 천재인가, 아니면 사기꾼인가?

조 바이든 대통령의 아들 헌터 바이든(51)의 데뷔 전시회를 놓고 지금 미 정가와 화단이 시끄럽다. 오는 9월 LA에서 ‘VIP 프라이빗 쇼’를 가진 후 10월에는 뉴욕 소호의 조지 버제스 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갖는다는 것이다.

정계와 미술계가 문제 삼는 것은 그의 전시나 작품성이 아니다. 신진화가의 회화 한 점이 50만달러에 달하는, 화단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작품가격 때문이다. 예술이라는 다분히 주관적이고 측정 불가능한 가치와 ‘대통령 아버지’를 이용한 돈벌이 의도가 너무도 선명하게 읽히는 탓이다.


조 바이든과 첫 아내 닐리아 헌터 사이에서 태어난 차남 헌터는 언제나 바이든 대통령의 ‘아픈 손가락’으로 불려왔다. 어머니 닐리아는 불과 서른 살이던 1972년, 세 아이를 데리고 크리스마스 쇼핑에 나섰다가 그녀의 스테이션 웨건이 트럭과 충돌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그때 한 살배기 딸 나오미도 함께 죽었고, 아들 보(당시 3세)와 헌터(2세)는 크게 다쳤다.

당시 조 바이든은 처음 도전한 연방상원 선거에서 현역 공화당 상원을 물리치고 당선한 직후였다. 29세 젊은이가 턱없이 부족한 선거자금을 가지고 승산 없는 선거운동을 벌여 승리했는데, 이 캠페인을 진두지휘한 사람이 닐리아였다고 하니 바이든의 충격과 상심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할 수 있겠다. 애써 얻은 상원의원 직을 포기하려했을 정도로 절망했던 그는 주변의 설득으로 다시 일어섰고, 두 아들의 병실에서 상원위원 취임선서를 가졌던 일이 유명한 일화로 남아있다.

장남 보 바이든은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는 후계자의 길을 정석으로 걸었다. 시라큐즈 법대를 나와 변호사와 검사로 활약했고, 육군소령으로 이라크에서 복무하며 동성훈장을 받았으며, 델라웨어 주 검찰총장으로 10년간 재직했다. 누가 봐도 전도유망한 정계스타였던 그는 그러나 돌연 뇌암 진단을 받고 2015년 46세로 사망, 바이든의 가슴에 다시 한번 대못을 박았다.

반면 차남 헌터는 내내 골칫덩이였다. 예일 법대를 나와 변호사가 되긴 했지만 마약과 알코올 중독에 빠져 정상적인 커리어를 갖지 못했다. 연방정부기관 여기저기서 일한 적이 있고, 로비스트로 활동했으며, 한때 투자와 자문회사를 설립 운영하기도 했다.

가장 문제가 된 전력은 중국과 우크라이나의 기업에서 거액의 월급을 받는 사외이사직을 맡았던 일이다. 특히 아버지가 부통령이던 시절에 우크라이나의 개스회사로부터 5년 동안 월 5만달러를 받았던 일 때문에 트럼프 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정부에 수사 압박을 넣었고, 이것이 직권남용 스캔들로 비화돼 2019년 첫 탄핵이 일어났다. 이 사건에서 바이든 부자의 개입의혹은 무혐의로 드러났으나 헌터의 처신이 부적절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헌터는 또한 중국 기업과의 거래에서 탈세 및 돈세탁을 한 혐의로 현재 연방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그의 타블로이드 급 스캔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첫 아내와 별거하던 중 헌터는 사별한 형수와 연인이 되었다. 두 사람은 세간의 손가락질 속에서도 2019년까지 3년간 관계를 이어갔고, 그녀와 헤어진 직후에는 남아공 출신의 영화감독 멜리사 코헨과 재혼, 현재 LA 할리웃 힐스에 살면서 한 살짜리 아들을 두고 있다. 첫 결혼에서 세 딸을 낳은 헌터는 또한 2018년 아칸소에서 사귄 여성에게서 사생아를 낳기도 했다.

헌터 바이든은 지난 4월 “아름다운 것들”(Beautiful Things)이란 제목의 자서전을 냈다. 책에서 자신의 중독문제와 아픈 과거를 모두 털어놓은 그는 아버지와 큰형의 그림자 밑에서 살아오는 동안 숱한 문제로부터 자신을 지켜준 것이 평생의 열정인 그림이었다고 고백한다.


그의 작품은 추상작업이다. 일본산 유포지에 다양한 색깔의 잉크를 빨대로 불어서 유기적이고 기하학적인 패턴을 만들어가는 그의 작품에 대해 화단의 평이 모두 나쁜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말도 안 되는 가격 때문에 주요언론들이 일제히 윤리문제를 거론하고 나서자 최근 백악관은 대통령 아들의 전시 및 작품판매와 관련한 합의사항을 발표했다. 작품 구매자의 기록을 작가포함 누구에게도 공개하지 않고 의심스러운 제안은 거절한다는 것이다. 과연 그것만으로 충분할까?

이 모든 스캔들의 해결책은 간단하다. ‘아티스트’ 헌터 바이든은 예술작업을 열심히 하되, 전시회와 작품 판매는 아버지가 대통령 직에서 내려온 후에 하는 것이다. ‘평생 열정’이었다는 화가 커리어를 하필 아버지가 대통령이 된 직후에 시작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기대보다 잘하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이 애물단지 아들 때문에 발목 잡힐 일이 생기지나 않을까 걱정스럽다.

<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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