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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와 팬데믹의 교훈

2021-07-19 (월) 파리드 자카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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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난 1년 반을 팬데믹과 함께 보냈다. 이번 위기를 돌이켜보며 우리가 배워야할 교훈이 무엇인지 생각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흐른 셈이다. 팬데믹에 앞서 우리는 국제사회의 시스템을 뿌리째 뒤흔든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었다. 2008년의 충격적 경험에서 우리가 얻은 교훈은 무엇인가? 그때 체득한 교훈이 팬데믹과의 싸움에 도움이 됐을까?

얼핏 보아도 그렇다.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진 시점에서 18개월의 시간이 흐른 2009년 중반, 미국의 실업률은 수십 년 이래 최고수준을 향해 치닫는 중이었고, 주식시장은 사상최악의 폭락장세에서 벗어나려 허우적대고 있었으며, 거품이 터진 주택시장은 말 그대로 빈사상태였다.

이와 대조적으로 팬데믹이 선포된 이후 18개월이 지난 지금, 미국인의 절반이 이미 백신접종을 받았다. 경제도 우렁차게 돌아간다. 성장률은 레이건 시절의 호황기에 버금간다. 주식시장은 연일 신 고점을 찍으며 상승장세를 이어가고, 임금까지 들썩인다. 미국만큼은 아니지만 다른 주요 선진 경제국들 역시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그 바탕에는 금융위기에서 걸러낸 교훈이 깔려있다. 조직적인 붕괴를 수반하는 위기상황에서 각국 정부는 지출을 확대하고 유동성을 제공하는 등 대담하고 신속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 2008년의 위기를 통해 우리가 터득한 교훈이다. 금융위기 당시 유럽과 미국은 긴축을 요구하는 재정 매파들의 목소리로 시끄러웠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침묵한다.

하지만 희소식은 거기까지다. 여기서 다시 2008년으로 돌아가 보자. 당시 정책담당자들은 위기타개를 위한 근본적인 변화의 필요성을 직감했다. 금융시스템은 위험하고, 규제가 허술했으며 불안정했다. 2010년, 의회는 금융업계의 필사적인 로비를 뚫고 대형 은행의 자본 확충 의무화, 차입투자비율 축소, 투기성 투자제한 및 스트레스 테스트 등을 골자로 하는 대대적인 금융개혁법을 제정했다.

사실 이번 팬데믹 기간에 금융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한 것은 2010년에 단행한 제도적 개혁 덕이었다. 팬데믹으로 세계 경제가 거의 완전히 봉쇄된 2020년, 지구촌의 거의 모든 은행들이 강력한 태풍을 꿋꿋하게 견뎌냈다. 각국 중앙은행의 지원이 부분적인 이유로 꼽히지만 금융개혁법에 따른 은행들의 자기자본 확충과 강화된 규제도 한 몫 단단히 했다.

하지만 코비드와의 전쟁에서 불거진 숱한 착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같은 실책을 바로잡기 위한 개혁의 필요성을 입에 올리지 않는다. 팬데믹 초기, 미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들은 코비드 진단검사, 역학조사, 격리와 분명한 대중소통 등과 같은 기본적 공중보건 조치를 취하는데 실패했다. 일부 국가들은 실패를 통해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활로를 열었지만 대부분은 예상보다 빨리 나온 백신에 의지해 간신히 벙커에서 기어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의료분야의 관료제도를 재정비하고, 코비드에 올바르게 대처한 방역 모범국들로부터 노하우를 전수받는 한편 분명 다시 찾아올 팬데믹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정책과 시스템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이냐는 진지한 논의에 착수한 국가는 단 한 곳도 없다.

금융위기와 팬데믹 사이의 분기점은 글로벌 차원에서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터프츠대학 국제정치학 교수인 대니얼 드레스너가 그의 저서 “시스템이 작동했다”(System Worked)에서 지적했듯 사람들은 세계적 차원의 협치인 ‘글로벌 거버넌스’를 우디 앨런이 캣스킬스 리조트의 음식에 관해 던진 농담처럼 “양과 질 모두 형편없다”고 평가절하한다.

사실은 다르다. 글로벌 거버넌스는 금융위기 중 놀랍도록 훌륭히 작동했다. 주요국들이 긴밀한 협력체제를 구축하고 각국의 중앙은행이 유기적인 공동보조를 취하면서 국제 금융시스템이 통제불능의 상태로 떨어지는 것을 막아냈다. 심지어 중국조차 국제사회의 주요 조치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워싱턴이 앞장서 다른 나라들의 공동보조를 끌어냈고, 그들을 지원하는 역할까지 충실히 해냈다. 경제사학자인 아담 투즈는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가 풀어놓은 유동성의 절반가량이 유럽은행들에 의해 사용됐다고 지적했다.


그것은 맹목적인 관대함이 아니었다. 티모시 가이트너 전 재무장관은 최근 필자와 만난 자리에서 “우리는 달러에 바탕을 둔 국제금융 시스템을 위기에서 구하는 것이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며, 이를 위해선 유동성 위기를 겪는 국가들에 대한 지원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털어놓았다. 글로벌 차원의 협력이 가능했던 이유로 그는 대부분의 주요국들이 “본능적으로 다자주의를 선호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우리 모두는 1930년대 국제 금융시스템에 엄청난 타격을 가한 민족주의와 보호무역주의를 방지하길 원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2008년 금융위기에 대한 대응은 경제적인 측면에서 성공을 거두었지만 정치적으로 참담한 실패를 기록했고, 이로 인해 반-엘리티즘과 민족주의의 물결이 휘몰아치면서 팬데믹에 대한 지구촌 차원의 부실대응을 불러왔다. 도널드 트럼프,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과 브라질의 자이르 보우소나르와 같은 정치인들은 엉거주춤한 태도를 취하거나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고 외국인들을 비난하는 방식으로 팬데믹에 반응했다. 진보성향의 정치인들은 보호주의적인 법을 제정하거나 심지어 백신 수출을 차단하기까지 했다. 팬데믹 진앙지인 중국의 경우, 시진핑은 금융위기 당시의 선임자들에 비해 폐쇄적이고, 비협조적이었으며 다자주의에 냉담했다.

팬데믹 위기 속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산뜻한 첫발을 내딛었다. 하지만 워싱턴은 맹목적으로 그위 뒤를 좇아가선 안 된다. 세계 지도국으로서 정치인 바이든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방향으로 가야한다. 만약 우리가 백신접종 대상을 지구촌 주민들 전체로 확대하지 않는다면 팬데믹은 계속 미적대며 우리 곁에 머물 것이고, 진화를 거듭하며 번져갈 것이다.

글로벌 차원의 경제회복과 성장유지를 가능케하는 유일한 방법은 막대한 부채에 짓눌린 개발도상국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이건 분명히 닥쳐올 미래의 위기에 대비하는 최상의 방법은 글로벌한 공동대응체제를 갖추는 것이다. 이건 눈빛 촉촉한 이상주의가 아니다. 10년 전의 위기상황에서 바로 이런 시스템이 작동했다. 앞으로도 글로벌 거버넌스 시스템은 제 일을 할 것이다.

<파리드 자카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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