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은 가정의 달이었고 21일은 ‘부부의 날’이었다. 둘(2)이 하나(1) 돼 가정을 이룬다는 뜻에서 5월21일이다. 그래선지 신혼의 20대 부부는 한 몸이 돼 포개서 잔다. 30대 때까지는 마주보고 자지만 40대는 천장을 향해 자고, 50대는 서로 등 돌리고 자고, 60대는 떨어져서(각 방에서) 자고, 70대는 피차 어디서 자는지 모르고, 80대는 한 사람은 지상에서 다른 사람은 하늘에서 잔다는 우스개가 있다.
서울에서 이웃에 살다가 초로가 된 후 LA에서 재회한 한 지인 부부는 50~60대 때에 등 돌리고 자거나 떨어져서 자지 않고 독특한 취침 스타일을 개발했다. 부인은 침대머리에 베개를 두고 제대로 자는데 남편은 부인 발치에 머리를 두고 거꾸로 잔다고 했다. 무슨 꿍꿍이인지 몰랐지만 집이 꽤 컸는데도 각방을 쓰지 않는 게 이상했다. 문제가 있는 부부라고 생각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얼마 전에 이혼했다.
지난달 깜짝 이혼발표로 세인을 놀라게 한 억만장자 빌 게이츠 부부의 집은 워싱턴 주 부자동내 메다이나에 있다. 사람들이 시애틀에서 관광보트를 타고 드넓은 워싱턴 호수를 한 시간가량 가로질러 달려가 먼발치에서 훔쳐본다. 숲에 가려 잘 보이지 않지만 엄청 넓다. 게이츠 부부가 2년간 이혼을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으므로 그 기간에 각방에서 잤음 직하다. 방이 수십 개는 될 터이므로 문제가 없다.
사실은 나도 아내와 각방을 쓰고 있다. 뭔 문제가 있는 건 전혀 아니다. 시애틀 파견근무 20년간 원 베드룸 아파트에서 혼자 자는데 익숙해졌다. 가끔 LA에서 아내가 올라와 머무는 동안엔 다른 선택이 없었지만 2년전 LA 집으로 귀환한 후 상황이 달라졌다. 방이 여유 있는데다 날씨가 시애틀과 달리 너무 뜨겁다. 아내 제안에 따라 각방을 쓰면서 시애틀에서처럼 활개 치며(?) 자도 거칠 게 없어서 좋다.
그런데 각방을 쓰는 부부가 우리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엊그제 USA 투데이 기사를 보고 알았다. 놀랍게도 부부 4쌍 중 한쌍이 딴 방에서 잔다고 했다. 잠자리에서도 코비드-19 거리두기 방역수칙을 준수하는 게 아니다. 이미 2012년 ‘양질수면 협의회’ 설문조사와 2017년 ‘전국 수면재단’ 설문조사에서 똑같이 응답부부 4쌍 중 한쌍이 ‘별고 없이’ 각방에서 잠자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USA 투데이는 전했다.
최근 ‘수면제의 원리와 기능’ 논문을 쓴 예일대 의대의 메이어 크리거 교수는 따로 자는 부부들이 공통적으로 꼽는 이유 중 코골기, 뒤척이기, 유사 불면증, 잦은 화장실 출입, 취침시간 불일치 등이 있다고 지적했다. 마지막 두 가지는 우리 부부에도 해당된다. 컴퓨터를 들여다보다가 자정 쯤 침대에 들면 아내가 잠이 깼다며 짜증낸다. 나는 아내가 밤새 두세 번 화장실에 가는 통에 잠을 설치기 일쑤다.
크리거 교수는 잠을 편히 자기 위해 각방을 쓰는 부부들이 한 침대에서 자는 부부들에 비해 애정의 밀도가 느슨해졌다는 연구보고서는 이제까지 없다며 오히려 각방 쓰기가 부부관계를 유지시키는 최상의 방법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수면연구 전문가인 랜드연구소의 웬디 트록셀은 멀쩡한 부부가 따로 잠자기로 결정했다면 부부관계에 뭔가 굴곡진 사연이 있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고 반박했다.
정작 진짜 문제는 우리 같은 노인이 아닌 중장년층 부부가 느닷없이 각방을 쓸 경우 자녀들을 비롯한 가족에게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부부사이가 금 간 것으로 지레 짐작하고 당황하거나 혹시 닥칠 파경을 걱정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로 정나미가 떨어져서 각방을 쓰기로 작정한 부부는 잠자리 이전에 다른 방법으로 표를 내게 마련이라고 반박하는 전문가도 있다.
크리거 교수는 부부가 애정이 식어 각방을 쓰기로 결정했다면 자녀들에게 그 사실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고, 그게 아니라면 자녀들 앞에서 평상시보다 더 자주 서로 손을 잡거나 다독거려줘 부부관계에 이상이 없음을 과시하라고 권한다. 그는 요즘 수면문제로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지만 거의 모든 문제가 쉬운 방법으로 해결된다며 각방을 쓰는 부부들도 전문의를 찾아 상담해보는 것이 좋다고 덧붙였다.
한인 노인부부들 중에는 각방을 쓰는 비율이 4쌍 중 한쌍 꼴로 높지 않을 것 같다. 좀 불편해도 웬만하면 참고 한 이불 속에서 잘 터이다. 조상 때부터 그렇게 해왔다. 요즘 한국에선 4쌍이 이혼하면 그 중 한쌍이 ‘실버이혼’이다. 20년간 5배나 늘어났다. 다행이도 이혼이유 중 잠자리 문제는 없다. 위에 말한 나의 지인 부부가 거꾸로 자지 않고 각방을 썼더라면 이혼을 면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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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춘 전 시애틀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