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한국시간으로 30일 대권도전을 공식 선언했다. 그의 총장 재직시절부터 제기돼 끊임없는 논란과 시비의 대상이 돼 왔던 대선출마 시나리오가 결국 현실화된 것이다. 퇴임 후 자신의 입으로 분명한 메시지를 내놓지는 않은 채 장외 전언정치 행보를 계속해온지 4개월만의 공식선언이다.
대선에 출마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니 뭐라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고도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지녀야 할 검찰총장 자리를 중도에 내려놓은 지 몇 개월도 되지 않아 대권도전에 나서겠다고 선언한 것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전례가 없었던 일이다. 심지어 임기를 다 마치고 대권 도전으로 직행한 경우조차 없었다.
윤석열은 출마선언을 통해 “위대한 국민의 상식으로부터 출발하겠다”고 거창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의 선택 자체가 보편적인 상식과 너무나도 동떨어져 있다. 원래 그의 임기는 7월24일까지였다. 윤석열은 중도 사퇴하지 않았더라면 여전히 검찰에 재임하고 있었을 그날에 대통령 선거에 도전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윤석열은 검찰총장 시절 “검찰의 중립은 생명과도 같다”는 말을 수도 없이 되풀이 해왔다. 그랬던 그가 총장직을 박차고 나가자마자 대권 레이스에 뛰어들었으니 그가 해온 발언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입에 올려온 검찰의 정치적 중립은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검사들에게만 적용되는 ‘내로남불 소신’이었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
윤석열은 대권 도전에 나섬으로서 검찰총장으로 자신에 내린 모든 결정과 행위의 의도를 의심받아야 하는 처지가 됐다. 변명하고 해명할 수는 있겠지만 억울하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스스로 자초한 일이니 말이다.
지금의 윤석열이 갖고 있는 지지기반은 스스로의 능력으로만 쌓은 것이 아니다. 자신을 임명해 준 문재인 정부와 대립각을 세움으로써 핍박을 받는 듯한 이미지를 만들고 이런 이미지가 현 정부에 비판적인 국민들의 지지를 모아주는 역할을 해주었다. 흔히들 윤석열을 스스로 빛을 내는 ‘발광체’가 아니라 다른 곳에서 빛을 받아야만 하는 ‘반사체’라고 평가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윤석열이 과연 수동적인 반사체로만 머물러왔는가라는 의구심이다. 그의 이름이 언론의 대선 지지율 조사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년이 넘었다. 처음에는 미미한 수치로 출발했지만 조사가 반복되면서 그는 유력 주자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런 일련의 과정 속에서 윤석열은 과연 아무런 사심 없이 오로지 검찰의 ‘정치적 중립’만을 고민하며 임무에 충실했을까? 문재인 정부가 아니었다면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했을 대권의 야망을 서서히 키우며 반사체로서의 광도를 높이기 위한 정치적 행위를 해온 것은 아닐까?
오로지 그 자신만이 알고 있을 진실이지만 대권도전을 선언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자신의 주가를 올리기 위해 의도적인 행위를 해왔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 윤석열은 “부패하고 무능한 세력의 집권 연장과 국민 약탈을 막아야 한다”며 “더 이상 문재인 정권의 기만과 거짓 선동에 국민은 속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치적 예의나 도의라고는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그의 수준 낮은 언사 속에는 자신을 임명해준 정부를 원색적으로 욕해 빛을 더 강하게 반사해보겠다는 일차원적 속셈만이 가득해 보인다.
27년 검사생활을 해온 게 평생 커리어의 전부인 그가 대통령으로서의 소양과 자질을 갖추고 있는지 의문이다. 또 처와 장모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는 온갖 의혹들도 결코 가볍게 여길 사안이 아니다. 능력을 증명하고 의혹을 해명하는 것은 오롯이 윤석열이 감당해야 할 몫이니 미리부터 왈가왈부하고 싶지는 않다. 그럴 자신과 각오가 있으니 대권도전에 나선 것 아니겠는가.
윤석열의 야심찬 도전이 그에게 찬란한 영광을 안겨주는 꽃가마가 될지 아니면 패가망신으로 이끄는 꽃상여가 될지 나는 모른다. 다만 그의 대권도전은 그것만으로도 이미 대한민국과 검찰 역사에 오점을 남기게 됐다는 것만은 분명하게 지적할 수 있다. 윤석열의 비상식적 정치행보로 검찰의 중립성과 독립성은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진 허접스런 수사가 돼 버렸다.
그동안의 정치검찰 행태는 권력에 부역함으로써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기생형’의 성격이 강했다. 하지만 윤석열은 스스로 최고 정치권력이 되겠다고 나섰다. 그러니 윤석열은 ‘정치검찰’의 새로운 ‘지평선’(‘지평’의 윤석열식 표현)을 열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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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