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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괴직전의 상황인가

2021-06-28 (월)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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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괴직전의 상황에 몰렸나, 아니면…’-.

평양발로 전해지는 소식들이 어딘가 심상치 않다.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라는 것이 올 상반기에만 세 차례나 열린 것부터가 그렇다. 전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다.

그 세 번째 회의가 열린 첫날부터 김정은은 심각한 식량사정을 공개적으로 시인하고 나섰다. 제2의 ‘고난의 행군’을 결심했다는 김정은의 발언이 나온 게 지난 4월이다. 그리고 두 달이 조금 지난 시점에 또 다시 죽는 소리를 해댄 것이다. 코로나19 저지를 위한 국경폐쇄 같은 극단적 방역조치도 한계에 이르렀음을 시사나 하듯이.


김정은은 전원회의 폐막 날 K팝 등 한국의 대중문화를 ‘악성 암’으로 부르며 경계령을 내렸다. 한국의 대중문화에 경멸감을 드러냈지만 사실은 극도의 두려움을 보이고 있다고 할까.

이 같은 보도들과 함께 김정은 체제와 관련해 던져지고 있는 질문이다.

식량난, 대기근으로 수많은 아사자가 발생한다. 과거 공산국가에서 발생해온 비극이다. 스탈린 시절 최대 1,500여만의 사망자를 낸 1932~33년의 우크라이나 대기근이 그 한 케이스다.

중국에서는 50년대 마오쩌둥이 일으킨 대약진운동 실패와 함께 대기근이 발생, 최소 3,000만 이상이 굶어 죽었다. 70년대 크메르 루주 승리 후 캄보디아에서도 식량난이 발생, 최소한 수십만의 아사자를 냈다.

그리고 1990년대 후반(96~99년) 북한에서 발생한 게 이른바 ‘고난의 행군’이다. 대기근으로 북한 전체 인구의 10% 정도, 200여만이 죽어간 것이다.

대홍수, 천재로 인한 비극이다. 북한당국이 공식적 해명이다. 윌슨센터의 설명은 다르다. 우크라이나 대기근, 중국의 대약진운동과 마찬가지로 기후가 아닌 스탈린주의 경제시스템이 불러온 대참사라는 거다.

그 대참사 20년이 지난 시점에 북한 땅에 또 다시 찾아온 대기근의 악몽, 그 원인은 무엇인가. 북한 당국은 이번에도 기후 탓으로 돌리고 있다. 진짜 이유는 과거에도 그랬던 것 같이 정치에서 찾아진다는 것이 북한 전문가 로버트 켈리의 지적이다. 다름 아닌 최악의 폭정과 부정부패가 그 원인이라는 것.


한 체제가 국민들을 먹이지 못할 때 취할 정책은 셋 중의 하나다. 정치적, 혹은 정책의 변화를 꾀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외국의 원조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도 아니면 폭동과 내부저항을 감수하는 것이다.

과거 김정일은 수백만의 북한주민을 죽음으로 내모는 선택을 했다. 그리고도 수 십 년 동안 아무 정치적 변화도 추구하지 않았다. 아래로부터의 요구를 수용한다는 것은 체제도전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때문에 비효율적인데다 부패하기까지 한 사회주의를 그대로 밀고 나갔다.

그런데도 북한에서는 아무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 극심한 경제난에 시달린다. 위정자의 실정과 심각한 부정부패로. 그런데도 정권이 유지된다. 그런 케이스가 없는 것은 아니다. 회교 혁명정권의 이란, 유고 차베스로부터 정권을 물려받은 베네수엘라의 마두로체제가 그 경우다.

마두로체제에서 물가는 2018년 한 해에만 180만 퍼센트 상승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그런데 어떻게 정권이 유지됐나. 인민을 철저히 짓밟는 거다. 무지막지할 정도로 공포정치를 해대는 거다.

거기에다가 알파가 있다. 중국과의 커넥션이다. 전 세계가 외면하고 있지만 중국과의 교역을 통해 통치자금을 확보해왔다. 그 돈으로 체제를 떠받들고 있는 충견들을 돌본 것이다.

과거 김정일도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중국과의 밀무역을 슬며시 방조했다. 그 결과가 장마당 자본주의경제다. 무엇을 말하나. 자칫 체제가 무너질 수 있을 정도로 사태가 그만큼 위중했었다는 반증이다.

김정은은 권력승계와 함께 배고픔으로 또 다시 허리띠를 죄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인민을 사랑해서가 아니다. 대기근은 체제도전의 촉매제가 될 수 있다는 인식에서 한 말이다.

김정은 체제는 그러면 임박한 대기근과 함께 체제도전의 위기를 맞이하게 될까. ‘아닐 것이다’란 전망이 여전히 지배적이다. 중국은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에 있는 북한에서의 내폭사태 발생을 결코 방관하지 않을 것이란 이야기다.

그렇다고 김정은 체제의 존속이 마냥 보장된다는 것은 아니다. 북한에 대한 미국 등 서방의 경제제재는 계속된다. 그런데다가 코로나 바이러스 창궐과 함께 그나마 경제기반도 무너진다. 상황은 날로 악화, 군과 당의 엘리트들마저 쪼들리게 된다.

그런 경우 정치적 이상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민중봉기가 아니다. 김정은 체제를 떠 받쳐온 엘리트 계층에서 내분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상당수 전문가들의 진단으로 김정은의 반 사회주의와의 투쟁 운운 발언에서 그 징후가 엿보인다는 것이 일부 북한전문가들의 주장이다.

북한은 곧 붕괴될 것인가. 아무도 자신 있게 그 때를 말 할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한 번 균열이 일면 무서운 속도로 무너져 내린다는 것이다. 과거 베를린 장벽, 소련제국이 붕괴에서 보듯이.

김정은 체제를 조기 안락사로 유도하는 것, 이것이 폭정과 기아에 시달리는 2,500만 북한주민을 진정 살리는 정책이 아닐까.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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