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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리로 돌아온 건 외교정책 뿐

2021-06-21 (월) 파리드 자카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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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돌아왔다.” 취임 후 첫 유럽순방에 나선 조 바이든은 수차례 “미국의 귀환‘을 선언했다.

이번 해외순방을 통해 국제사회의 주요 국가들이 추구해야 할 공동의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는데 필요한 회원국들의 협력을 끌어내는 한편 일부 국가들의 그릇된 행동을 저지하는 등 지도국의 위신을 회복했다는 점에서 미국의 귀환 선언은 정당하게 들린다. 그의 주장대로 미국의 외교정책은 제자리를 찾았다. 그렇다면 미국 역시 원위치로 돌아온 것일까? 그건 대단히 까다로운 질문이다.

미국이 지닌 영향력의 토대는 늘 힘(power)과 목적(purpose)의 조합이었다. 바이든은 두 건의 의미 있는 성과를 올린 상태에서 첫 유럽순방길에 올랐다. 첫째, 그는 신속하고 광범위한 백신접종을 통해 세계의 주요국들 가운데 가장 먼저 미국을 포스트-팬데믹 세계로 이끌었다. 둘째, 그는 방대한 경기부양안의 의회통과를 견인함으로써 미국 경제의 놀라운 회복을 가능케 하는 단초를 열었다.


그러나 경제적 번영이 지도국의 지녀야할 유일한 자격조건은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팬데믹 이전의 인상적인 경제성장을 주도했지만, 주요 선진국들은 그의 지도력에 경의를 표하지 않았고, 미국을 주도국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이와 대조적으로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의 우방들이 동의하는 주요 이슈들에 초점을 맞추는 방식으로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예컨대 자유 국가들 사이의 관계를 강화하고, 기후변화에 대응하며, 여러 형태로 이루어지는 러시아의 호전적 행위를 저지하는 한편 중국의 도전에 단호히 맞서는 방식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회원국들을 폄훼하는데 골몰했던 트럼프와는 전혀 딴판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회담을 일부 언론은 ‘수퍼파워 정상회담’으로 지칭했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러시아는 더 이상 수퍼파워가 아니다. 세계 10위권을 한참 밑도는 러시아 경제는 핵심 분야에서 미끄럼질을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는 11개의 시간대를 지닌 광대한 국가이자 세계 최대 핵무기 보유국 중 하나로 거부권을 움켜쥔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다. 푸틴이 통치하는 러시아는 1945년 이후 처음으로 유럽의 영토를 합병하고, 엄청난 규모의 사이버공격을 감행하며, 해외로 망명한 반체제 인사들을 추적해 암살하는 등 국제무대에서 훼방꾼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번 회담에서 바이든은 전문성과 외교적 기량을 앞세워 자신의 러시아 상대역을 다루었고, 그 결과 푸틴으로부터 “노련하고 균형 잡힌 직업 정치인”라는 평가를 얻었다. 최근 트럼프를 “다채로운 성격의 소유자”로 “충동적으로 결정을 내리는” 인물로 묘사했던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자신을 향한 트럼프의 거듭된 추파에도 불구하고, 푸틴은 변덕스러운 예측불허의 쇼맨보다 차분하고 이성적인 미국 대통령을 상대하는 것이 낫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반면 러시아를 향한 미국의 목표는 끊임없는 적대적 관계가 아니라 민감한 전략적 문제들을 서로 논의하고, 협상하고, 관리하는 안정적인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바이든-푸틴의 회동에서 나온 가장 중요한 뉴스 중의 하나는 사이버공간과 관련한 것이다. 최근 들어 사이버공격, 사이버범죄와 랜섬웨어 문제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정부의 입장에서는 달리 대응할 방법이 없다. 지난 2014년, 북한이 소니 픽처스를 상대로 사이버공격을 감행했을 당시에도 미국은 거의 손을 쓰지 못했다. 북한은 소니 픽처스가 김정은을 풍자한 영화를 만든 데 대한 보복으로 이 회사 컴퓨터망의 70%를 파괴했다.

푸틴과의 회담에서 바이든은 처음으로 러시아의 사이버공격에 미국이 지닌 막강한 사이버 역량을 총동원해 보복하겠다는 강력한 신호를 보냈다. 이와 관련, 바이든은 푸틴에게 사이버공격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될 16개 핵심 전산시스템 명단을 건네줌과 동시에 만약 이들이 공격을 받을 경우 미국은 러시아의 송유관을 보복대상으로 삼을 것임을 암시했다. 이와 함께 두 정상은 미국과 러시아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이 문제와 관련한 기본 룰을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이 같은 정책변화는 지속력을 지닐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의 첫 유럽순방외교는 소박하면서도 현실적인 목표에 초점을 맞추었고, 대부분 만족스런 성과를 거두었다. 퓨리서치 센터의 최근 서베이에 따르면 미국에 대한 지지율은 놀라울 만큼 큰 폭으로 반등했고, 국제사회로부터 다시금 건설적 지도국으로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모든 결과가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추락한 미국의 권위 중 일부는 여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다. 민주주의의 등대로서의 역할이 그것이다. 서베이에 응한 국가의 국민들 가운데 57%는 미국은 이제 더 이상 민주주의 모범국가가 아니라고 답했다. 특히나 세계의 젊은이들은 미국의 민주적 제도에 회의감을 드러냈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결정적 위기를 맞았던 이전의 시기에 비해 근본적으로 악화된 부분도 있다. 워터게이트 이후, 전 세계가 미국을 민주주의의 실패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교정하는 국가로 우러러본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경악했다. 그것은 미국이 잘못된 경로를 교정하는 역량을 지니고 있다는 신호였다. 그러나 한번 상상해보라. 워터게이트 스캔들 이후 공화당이 닉슨을 비난하는 대신 그가 전혀 잘못을 범하지 않았다는 억지와 함께 부인과 의사방해로 일관하며 닉슨의 가장 악질적인 행위를 뒷받침하기 위한 법안을 제안하는 등 그를 전폭적으로 감싸 안았다면 어땠을까? 게다가 스캔들과 관련해 당에서 숙청된 인물들이 닉슨을 비난한 사람들 일색이었다면?

미국 민주주의의 부패는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건 단지 메시지나 이미지의 문제가 아니다. 장담하건대 우리가 이 문제를 교정할 때까지 미국은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파리드 자카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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