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곡인 Anything That’s Part of You는 떠나버린 연인의 흔적을 찾으려고 애쓰는 한 남자의 애틋한 사연을 읊은 노래이나 한국판인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은 가을에 떠나버린 여인을 그리워하는 한 남자의 외로움을 표현한 가사 내용이다. “찬 바람이 싸늘하게 얼굴을 스치면 따스하던 너의 두 빰이 몹시도 그리웁구나. 푸르던 잎 단풍으로 곱게 곱게 물들어 그 입새에 사랑의 꿈 고이 고이 간직하였더니 아! 그 옛날이 너무도 그리워라 낙엽이 지면 꿈도 가는 줄 왜 몰랐던가 사랑하는 이 마음을 어찌하오 어찌하오 너와 나의 사랑의 꿈 낙엽따라 가버렸으니.”
이 노래 가사는 신세계 레코드 회사 대표 아들인 강찬호가 만들었다. 그는 당시 사귀어오던 연인과 헤어진 후에 그 아픔을 쓴 자작시를 Elvis Presley가 노래한 ‘Anything That’s Part of You’를 편곡하여 가사를 접목하였다. 그리고 신세계 레코드 회사 전속이며 새로운 앨범을 준비하고 있던 ‘쟈니 리’ 에게 이 곡을 줄려고 계획했었다. 그는 ‘ 뜨거운 안녕’과 ‘내일은 해가 뜬다’ 노래로 한창 인기를 얻고 있던 가수 있다. 마침 그 때 강찬호는 가수 차중락이 자신처럼 실연을 당한 사실을 전해 들었다. 차중락이 여자 집에서 결혼을 반대해서 마음의 상처를 입고 있다는 걸 알고 마음을 바꿔 그에게 곡을 주었다. 이렇게 하여 이 노래를 취입할 가수가 바뀌게 되었다.
신세계 레코드회사는 이 노래를 처음엔 기대하지 않아 앨범 제작 시 B- Side 에 삽입했었다. 레코드 판매 후 상상외로 타이틀 곡 보다 ‘엽따라 가버린 사랑’ 반응이 좋아 다시 앨범 재작업에 들어갔다. 이번에는 차중락의 노래가 메인 타이틀곡으로 수록되어 전 지역 소매상으로 배부되어 판매에 들어가자 이 레코드는 숨돌릴 틈 없이 호조를 보여 그해 최고의 판매 기록을 달성했다.
차중락이 음악계에 발을 들인 계기는 그의 나이 22세 때 사촌인 차도균의 권유로 시작되었다. 1963년 다섯 명이 모여 한국 최초의 록 그룹 ‘키 보이스 ‘가 탄생되었다. 이때 창립 멤버는 리더 보컬에 차중락, 차도균이 베이스 기타, 김홍탁이 리더 기타, 옥성빈이 키보드, 윤향기가 드럼을 담당했다. 초창기에는 미국의 그룹 ‘비치 보이스’ 스타일을 추구했으나 1964부터 ‘비틀스’의 영향으로 방향을 바꿔 그 후부터 한국의 비틀스라는 칭호를 얻었다.
이들이 주로 활약한 무대는 미 8군이었으며 틈나는대로 국내 무대에 서기도했다. 국내 무대 첫 데뷔날인 부산 극장 무대에 올랐을 때 극장 입구는 물론 인근 모든 장소에 까지 인산 인해로 담벼락이 무너지고 유리창이 깨지는 등 대소동이 일어 났었다. 한국의 비틀스이자 한국의 엘비스 프레슬리의 첫 등장은 이렇게 요란하게 시작되었다. 그 당시 부른 노래는 ‘그대는 가고’, ‘사랑의 종말’, ‘철없는 아내’, ‘나는 혼자다’, ‘밤 하늘의 연가’ 등이었다. 리더 보컬인 차중락은 라틴 뮤직, 음악 그리고 심지어 칸쑈네 음악까지 모든 분야의 노래를 잘 소화시켰다. 그 중에서 특히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를 잘 불러 미 8군 무대에서 한국의 엘비스 프레슬리란 칭호를 얻었다.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의 원곡은 미국에선 성공하지 못했다. 그런 노래가 한국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첫째 멜로디가 한국인의 정서에 잘 어울리는 곡이며 둘째 번안 가사가 들으면 들을수록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마력이 있고, 셋째 리더 기타를 담당했던 김홍탁의 강력한 기타 사운드가 한층 더 가슴 속을 파고 들었으며 넷째 차중락의부드럽고 떨리는 목소리가 가을 정취에 잘 어울렸기 때문이다. 참고로 처음엔 원곡인 Anything That’s Part Of You 는 소수의 팝 매니아만 알려졌으나 차중락이 번안 가요로 부른 후 힛트하자 덩달아 사람들이 호기심 삼아 원곡을 찾아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가 다시 유행하기 시작했다. 그리곤 팬들은 엘비스의 노래가 좋으니 차중락의 노래가 좋으니하면서 갑론을박 논쟁을 많이 했었다.
이 노래 성공으로 차중락은 그 동안 몸 담았던 그룹을 떠나 솔로 가수로 활동했으며 그 당시 라이벌인 배호와 함께 한국의 최고의 인기가수로 등장했다. 그러나 데뷔 한지 불과 5 년만에 1968년 11월 11일 서울 동일 극장에서 공연 중 쓰러져 27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그의 갑작스런 죽음은 많은 소녀팬에게 충격을 주었고 한국 최초의 틴 아이돌인 그는 가장 많은 여성팬을 가진 최초의 가수였다. 그의 각잡스런 죽음에 가요계는 한동안 충격속에 빠졌으며 그를 기념하는 사업이 속속 등장했다. 그 중 하나가 ‘낙엽상’이다 이 상은 한 해에 가장 뛰어난 활약한 남녀 신인 각각 한 명에게 주어진 상인데 첫 해는 나훈아와 이영숙이 받았다. ‘낙엽따라 가바린 사랑’은 가을을 대표하는 노래로 각인되어 해마다 낙엽이 찾아오면 어김없이 라디오에서 들려온다. 지금의 계절은 여름철이지만 가을의 청취를 느끼면서 이 노래로 무더위를 잠시 잊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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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