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국경 넘는 백신원정

2021-04-0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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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부의 차이는 백신 접종에서도 확연하다. 정작 미국민 사이에서 이 문제가 이슈화된 적은 거의 없다. 종사하고 있는 직종이나 기저질환 유무 등을 사실과 다르게 이야기해 빨리 접종을 받는 것은 가능하겠으나 돈으로 백신을 먼저 샀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같은 조건이라면 오히려 저소득 주민이 우선 접종에 유리하다.

캘리포니아가 대표적인 곳으로 백신 일부를 코로나 전파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지역에 우선 할당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LA 코리아타운 등 필수 업종 종사자가 많은 주거 밀집지가 대상이 된다. 저소득 소수계 이민자들에게 유리한 것이다. 접종 자격을 알기 위한 질문을 체크해 나가다 보면 특정 우편번호 지역 거주여부를 묻는 항목이 나오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멕시코는 다르다. 부자 멕시코 인들은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미국에 날아와 백신을 맞고 가는 일이 드물지 않다. 돈으로 이웃 나라 백신을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달 말 현재 백신을 1회라도 접종한 멕시코 인은 전체의 4% 정도에 불과하다. 접종은 내년 한참 뒤까지 이어져야 하리라고 한다. 그러다 보니 멕시코 부유층의 미국 백신 여행이 적지 않다고 얼마 전 LA타임스는 전했다.

멕시코 북부의 한 시에서 시장을 지낸 70대 멕시칸은 지난 1월 전세 비행기를 타고 텍사스로 와 공항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농장지대에서 1차 접종을 했다. 대기줄은 짧았고, 신분 확인은 멕시코 여권으로 충분했다. 그는 2월에 다시 날아와 2회 접종을 마쳤다. 많은 미국민 보다 오히려 접종을 빨리 끝낸 것이다.

이런 사람이 그 한 사람이 아니라고 한다. 인구 12만명인 이 도시의 주민 수 천명이 미국으로 넘어 와 백신을 접종했을 것으로 전직 시장은 추산했다. 이 도시에는 멕시코 대기업의 본사가 몰려 있다고 한다.

멕시코 텔레비전의 한 호스트는 마이애미에서 백신을 맞은 사실을 소셜 미디어로 공개했다. 그는 접종 사진과 함께 “우리 나라가 이런 걸 제공하지 못하고 있으니 슬픈 일”이라는 트윗을 날렸다. 이 트윗에는 “돈이면 다 되는구만” “후안무치” 등의 답글이 달렸다. 멕시코 언론에 따르면 현직 멕시코 대법관 2명도 샌안토니오로 날아 가 백신을 맞고 돌아갔다.

접종을 원하는 사람보다 공급되는 백신 양이 여유가 있는 텍사스 농촌 지역에서는 백신 접종이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한다. 예약없이 잠시 줄을 서 기다리면 된다. 캘리포니아도 전 연령층 백신이 허용되면 월경 접종이 늘어나리라는 전망이다.

원정 접종은 불법이 아니다. 백신을 접종할 때 거주지 증명을 요구하는 주는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물론 시민권 여부를 확인하는 것도 아니다. 하루 2,500명에게 접종을 제공하고 있다는 텍사스 에딘버그의 한 의료기관은 접종할 때 나이와 생년월일만 묻도록 지시받고 있다고 전했다. 주소와 국적 등은 묻지 않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백신접종을 마친 한 멕시코인은 LA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백신 여행은 미국 경제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한 번 가면 호텔비와 식사비 등으로 많은 돈을 쓰는데 백신 가격은 그보다 훨씬 싸지 않는냐는 것이다.

멕시코 일부 부자들과는 달리 미국 부자들 사이에서는 팬데믹이 덮치면서 벤틀리나 램보르기니 등 럭서리 차를 사는 것이 붐이라고 한다. 주식은 오르고, 여유돈은 쌓이는데, 휴가는 갈 수 없고-. 따분해진 사람들이 비싼 차로 기분 전환을 하려는 것이 주요 원인으로 분석된다.

돈으로 백신을 남보다 먼저 맞는 대신, 자기 돈으로 고급 차를 사는 것은 뭐라고 할 일이 아니다. 돈을 주식이나 은행에 묶어 두지 않고 소비에 사용하는 것이니 경제에 도움도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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