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시안 아메리칸으로 살기

2021-03-29 (월) 민병임 뉴욕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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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조지아 주 애틀랜타에서 일어난 총격사건으로 8명이 사망했고 아시아계 사망자 6명 중 한인여성 4명이 졸지에 변을 당했다. 애틀랜타 근교 체로키 카운티의 마사지샵과 애틀랜타 시내의 스파 두 곳에서 21세 백인 로버트 애런 롱의 연쇄총격으로 이민의 삶을 개척하던 어머니들의 꿈이 꺾였다.

홀로 두 아들을 키워낸 51세 그랜트 현정씨, 자녀들에게는 아르바이트도 못하게 하고 생활비를 모두 자신이 책임지려 했다. 74세 박순정씨, 69세 김순자씨는 자녀들에게 더 나은 교육과 삶을 살게 해주고자 이민을 왔고, 63세 유영애씨는 코로나19로 해고된 뒤 새로 구한 일터에서 총격을 당해 두 아들을 두고 눈을 감았다. 다들 먹고 살기위해 일하다가 죽어야할 이유도 모른 채 허무하게 세상을 떠난 것이다.

애틀랜타는 미국의 인종차별사로 가장 유명한 남북전쟁(1861~1965년) 당시 전화의 중심이 된 지역이다.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렸다는 마가렛 미첼의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애틀랜타 남쪽 교외의 존스보로가 배경이다. 남북전쟁은, 중공업·경공업이 발달한 북부는 노예제 폐지를 주장했고 쌀·면화 등 노동집약적 산업이 주가 된 남부는 흑인노예 노동력이 절대 필요했기에 일어난 내전이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2017년 인종주의가 정치·사회적 이슈로 부상하면서 미국의 극장에서 퇴출당한 상태다.


그런가 하면 애틀랜타는 1950~60년대 비폭력운동을 주도하면서 인종차별 없는 미국 만들기에 공헌한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생가와 기념관이 있는 곳이다. 인종차별 역사와 밀접하게 연관된 지역인 애틀랜타에서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에 안전지대가 있는 것은 아니다. 유사한 아시안 증오범죄가 뉴욕에서도 캘리포니아에서도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애틀랜타에서 또 일어날 수도 있다.

이민자의 나라 미국이 유일하게 이민을 금지했던 나라는 중국, 1882년 중국인 배척법을 연방의회가 통과시켜 중국인의 시민권 불허, 재산소유 금지, 백인과의 결혼 금지 등으로 60년 이상 지속되다가 1943년에 폐지됐다. 20세기에는 일본인에 대한 반감도 세졌는데 북부지역 경우 자동차 산업을 일본에 빼앗겼기에 일본인들은 차별받았다. 그런데 일본 버블경제 거품이 꺼지고 일본이 미국을 경제적으로 추월할 가능성이 사라지자 일본인 혐오는 줄어들었다.

지금은 아시안 중에서도 한인들이 인종차별 사건이 터졌다 하면 가장 많은 피해를 보는 중이다. 작년 5월 조지 플로이드 사망이후 촉발된 ‘흑인 생명도 중요하다’는 시위가 일부 폭도들에 의해 파괴, 약탈 방화로 번져 애꿎은 한인 가게가 거덜 났었다.

장기간의 불황과 코로나19로 미국인 일자리는 없는데 한인들은 잘 먹고 잘 산다는 상대적 박탈감, 시기질투가 혐오성 발언과 인종적 모욕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인들이 얼마나 근면 성실하게 일하는 지, 미국사회의 기여도 등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당장 자신의 밥그릇이 먼저다.

아시안 증오범죄 발생 시 강력 대응, 적극신고는 물론 증오범죄혐의 입증할 증거 확보가 중요하다. 주변사람 증언, 사건 당시 영상, 911과 정부기관, 비영리단체에의 신고 등등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해야 한다. 이번 애틀랜타 총격에 수사당국이 증오범죄 입증을 제시하지 못해 악의적 살인-가중폭행 혐의만 발표한 상태다.

또한 인종혐오 범죄에 대해 강한 법이 제정되어야 한다. 19일 애틀랜타를 방문한 바이든 대통령이 “인종차별과 백인우월주의가 지속적인 차별을 가능하게 만든 법을 바꾸겠다”고 했었다.

요즘, 미전역의 한인들이 아시아계 겨냥 증오범죄를 규탄하는 연대 움직임이 일고 있다. 아시안 아메리칸으로 미국에서 살려면 이번 기회에 타인종 소수민족과도 단결 및 네트워크로 연대감을 갖고 정보를 공유해야한다. 아웃사이더가 아닌 미국의 주인으로서 소통을 해야 한다.

<민병임 뉴욕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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